선교지 방문을 위해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아래에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그 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러 도시를 지나갈 때마다 그 큰 도시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보이는 그 도시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꽤 높다고 생각했던 빌딩들도 그리 높다고 여기지지 않았다. 바삐 다니는 자동차도 바쁘게 보이지 않았고, 여유가 없이 사는 사람들도 그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가 가는 속도에서 볼 때에 그리 빠르지도 또한 바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때에 “나도 저기에서 사는데...”라는 생각과 “저기에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가 생각났다. 저 밑에서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죽이고, 물고 뜯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 나는 한 단계 위에 있는 사람 같이 느껴지면서 왜? 그렇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오늘도 라디오와 TV에서는 살벌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들이 크게 소리친다. 절망과 아쉬움의 메아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무슨 말인지 조차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저 아래 풍경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좋게만 보였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얼마 후 땅에 착륙하면 이전에 하던 것 같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 말고, 이전처럼 속상해 하지 말며, 혈압을 높이며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그렇게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55편 22절)라고 하신다. 다윗은 고통의 압박,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비둘기와 같이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그런데 그가 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붙드시고 요동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확신을 주셨다. 현재 당하는 답답함도 잠깐의 비행기 여행으로 마음에 넉넉함을 얻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편이 되어주셔서 늘 함께 하시며, 사슴이 높은 곳을 다니는 것과 같이 나를 인도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 아무리 절망이 크다고 하여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그 절망이 결코 크지도 또한 높지도 않음을 확신하게 된다.
믿는 성도는 매일 하늘을 날아 올라가지 않는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늘을 날아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은혜를 경험하지 않는가?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세계가 한 눈에 보이지 않는가? 말씀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지 않는가? 그 때에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새롭게 깨달으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리게 되지 않는가?
예수를 믿는 성도는 비싼 비행기 표를 사지 않아도 하늘을 날아오르는 여유를 늘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나그네라는 것을 잊지 말고 천국에 마음으로 두고 살아가는 성도가 될 때에 모든 것을 이길 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