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매년 의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국방 정책·예산 법안에 한국계 미국인들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 정부가 6·25 전쟁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과 이별하게 된 한국계 미국인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지원해주는 내용이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태평양을 건너 성사될지 주목된다.
지난 7일 미국 의회가 공개한 '2026 국방수권법안(NDAA) 상·하원 통합 안'에는 국무부 장관에게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과 헤어진 한국계 미국인들의 명부를 작성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북한에 있는 가족과 대면·화상 상봉을 할 기회가 생길 경우 정부가 나서 전적으로 돕겠다는 취지다.
이 법안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게 될 경우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의 상봉 문제를 의제에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또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 명부 작성 등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적절히 협의해야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법안은 북한인권 특사를 통해 명부 작성 상황, 이산가족 상봉 통계, 미국의 이산가족 상봉 요청에 대한 북한의 답변 등을 국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재 국무부 산하 북한인권 특사 자리는 공석으로 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줄리 터너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 부차관보 대행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사임한 뒤 그 자리를 비워둔 상태다. 따라서 북한 인권 특사를 새로 임명해 이 업무를 맡기는 게 급선무다.
미국 의회가 한국계 미국인의 북한 내 가족 상봉 지원을 법안에 포함시킨 배경이 있다. 가장 큰 요인은 6·25 전쟁 이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이별한 한국계 미국인들의 이산가족 상봉 요청이 수년간 이어져 온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북한 김정은을 추켜세우며 언제든 만나 대화할 뜻을 누누이 밝힌 만큼 미·북 대화가 성사될 때를 대비해 아예 법안에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내용을 명문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 지원 문제는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이 수년간 정부에 요청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하원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입법 절차를 마치지 못한 채 의회 회기가 바뀌는 바람에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2026 국방수권법안의 문구는 상원과 하원의 협의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제정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처음으로 미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공식 지원에 나서게 되는 거다.
이 법안이 한미 양국에 모두 긍정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건 미국 내 한국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6.26 전쟁에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해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전후에 이민을 통해 미국사회의 일원인 된 한국계 미국인들, 즉 한인 커뮤니티 또한 한미 두 나라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며 한미동맹의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역대 정부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며 남북한 간 긴장 완화와 인도주의적 협력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의 고령화와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실험 등 잦은 군사적 도발로 최근에 와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런 현실에서 그동안 남북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한국계 미국인의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미·북 사이에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담겨있다. 당장 미국 내 한국계 커뮤니티의 정서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한미 동맹 강화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시간이 많이 없는 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6.25 전쟁이 끝난 지 72년이 지나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이 적지 않다. 현재 미국 내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에 대해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약 1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따라서 황혼기에 접어든 이산가족 생존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비록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그들이 원한다면 살아생전에 다시 만나 끊어진 핏줄의 정을 잇게 해 주는 것 외에 다른 정치적 고려 사항을 개입시켜선 안 될 것이다.
미 의회에서 법안이 최종 통과된다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이 문제를 한국 정부와 긴밀히 의논하도록 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한미 양국이 만나 보다 협력적이고 인도주의적 접근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한미 간 외교적 신뢰를 높이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내년부터 남북 대화 재개를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과의 대화의 내용과 범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발표가 없었지만 남북 간에 이견과 갈등이 큰 군사적인 문제보다는 인도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국이 법안 안에 아산가족 상봉 문제를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도록 했으니 내년에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미 국무장관 또는 북한 인권 특사가 한국에 오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 남북 이산가족 문제 상봉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10년 넘게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송환 문제가 반드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들은 6.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아닌 북한의 불법 납치에 의한 강제적 이산가족이다. 역대 어느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사안을 이 정부가 해결한다면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해온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얼마 전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며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대통령의 무지와 무관심까지 단숨에 덮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