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요나서 1장에 보면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킨 지 사흘이나 되었다. 그러자 요나가 여호와께 기도하는 장면이 2장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이 기도는 해석자들 사이에서 오래 논쟁이 오고 간 내용이다.
[2] 요나의 기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다는 말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완전히 위선적인 기도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완전히 성숙한 회개의 기도라고 보기도 어렵다. 분명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내용 자체는 경건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에 대한 회개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3] 특히 니느웨의 회개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심판하지 않으신 것에 대한 요나의 분노로 볼 때 2장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 내용은 ‘회개가 수반된 변화의 기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다급하고 절박한 상태에서 나온 기도’임을 알 수 있다.
깊은 물과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웠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럴 때 살기 위해 무슨 기도를 못 하겠는가?
[4] 하지만 3일 만에 살아서 세상의 빛을 보자 그의 속마음이 다시 드러나고 말았다. 니느웨 백성들을 심판하지 않고 돌이켜 구원하신 하나님이심을 잘 알았기에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다고 분노하면서 자백한다. 그러고는 자기를 죽여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한다.
내게 이런 불순종의 종이 있다면 당장 감옥에 처넣고 말 것인데, 그런 자도 심판하시지 않고 많은 이방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일에 활용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5] ‘불순종’뿐 아니라 ‘이기적인 기도’까지 올린 요나서 2장에서의 요나의 모습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는 죄인의 모습인데 말이다.
요나서에 나오는 요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자.
2013년, 나이지리아 해안 근처에서 예인선의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해리슨 오케네(Harrison Okene)의 이야기이다.
[6] 이른 새벽, 거친 파도로 인해 선박이 전복되어 약 30미터 깊이의 해저로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원 11명이 선체 안에 갇혔고,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아직 살아 있었다.
해리슨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맨발로 차가운 물에 잠긴 채, 난파선 내부에 남아 있던 약 1.2미터 크기의 작은 공기층(Air Pocket)에 의지해 간신히 생존하고 있었다.
[7] 음식도 없고, 빛도 없으며, 탈출할 길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점점 그를 압박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다. 어둠 속에서 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부르짖으며 기억나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시편 54편의 말씀도 있었다.“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드시는 이시라.”
[8] 해리슨은 구조 장비도, 외부의 도움도 없이 무려 3일 동안 버텨냈다.
그리고 셋째 날, 시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잠수사가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 손의 주인공은 바로 해리슨이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 언젠가 나는 이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배 안에 공기가 남아 있는, 물 없는 공간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쳐도, 저체온증으로 3일간 생존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9] 의학 전문가들은 그가 어떻게 산소 중독이나 저체온증 없이 생존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해리슨은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셨다고 말이다. 그렇다.
오늘날 그는 가장 깊은 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구원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 손길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하며 살아가고 있다.
[10] 물속에서 살려달라는 요나의 기도 내용과 해리슨의 기도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요나의 경우 그 기도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사용하셔서 이방 민족의 회개라는 목적을 이루신다.
결국 요나서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요나의 신앙이 아니라, ‘죄인과 연약한 자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