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조셉 드수자 대주교의 기고글인 '왜 우리는 대사명(Great Commission) 완수의 날짜를 정해서는 안 되는가'(Why we shouldn't set a date to finish the Great Commission)를 10일 게재했다.
조셉 드수자 대주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인권 및 시민권 운동가이다. 그는 남아시아의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옹호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인 '디그니티 프리덤 네트워크(Dignity Freedom Network)'의 설립자이다. 또한 인도 성공회 굿 셰퍼드 교회의 대주교로 섬기고 있으며, 전인도기독교협의회(All India Christian Council)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서구에서 주도하는 유명 사역단체들이 "2033년, 곧 부활과 오순절 2,000주년 까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할 때, 미국의 컨퍼런스 홀에서는 대담하고 비전적인 선언처럼 들린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선교운동에서도 이런 목표를 표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미 자기 나라에서 극소수이며 심각한 박해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공개적인 선언은 곧바로 위험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된다.
이런 슬로건이 한 번 바이럴되기만 하면, 현지 교회들은 부정적 언론 보도, 괴롭힘, 경찰의 급습, 심지어 반(反)개종법 같은 새로운 공격에 직면한다. 1990년대 후반 AD 2000 & Beyond 운동과 Joshua Project 때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 인도 의회는 Joshua Project의 데이터베이스를 "외국 세력이 2000년까지 인도를 기독교화하려 한다"는 음모론의 증거로 활용했다. 복음에 위협을 느끼는 정치인들뿐 아니라, 중립적인 정치인들마저도 빌미를 잡게 된 셈이었다.
이러한 날짜 중심, 목표 중심의 캠페인은 SMART 목표, KPI, 대시보드, 카운트다운 시계 같은 맨해튼식 경영 전략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몇 기독교 다수국가의 경제적 영향력에 의해 뒷받침된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 있는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조합이, 아무리 진심일지라도, 제국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프로젝트 매니저처럼 행동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또한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재림의 날짜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 행 1:7).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말하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에게 "미전도종족 리스트를 판매 실적처럼 체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 예수의 이름을 '한 번 듣게 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한 적도 없다. 더 나아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전 세계적인 마감일을 발표하라고 명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누군가를 제자로 삼는 일은 우리 자녀조차도 사랑, 은혜, 실패, 회개의 평생 과정이다. 성경 어디에도 "언제까지 그를 복음으로 '도달'시켜야 한다"는 날짜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서구식 방법론은 각 문화의 미묘함을 간과하고, 종종 이웃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수천 년 된 종교·윤리 전통 속에 살아가며, 그 가치 체계는 오히려 기독교 다수국가의 물질주의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다.
"미전도(unreached)", "과업 완수(finishing the task)", "크루세이드(crusade)" 같은 표현은 여전히 식민주의적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지도 위의 '목표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어느 나라가', '어느 부유한 교회가' 무엇을 '도달'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들이 반(反)개종법을 만드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는 분명한 인권이지만, 거대한 자금과 마감일 중심의 캠페인이 그 자유를 남용할 때, 선교는 더 큰 해를 낳는다.
다수 세계(Majority World)는 서구 기독교가 "2033년에 과업을 완수하겠다"고 말할 때, 지상명령이 아니라 오래된 식민주의의 나팔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겸손하고, 진실하고, 문화에 맞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이다. 먼저 우리 자신의 나라와 이웃 속에서 산상수훈을 살아내는 것. 제자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볼 때 이루어진다.
인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의 많은 우리는 이러한 '2033 선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미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시는 일을 분별하며, 조용히, 존중하며, 평생에 걸쳐 그분과 협력하길 원한다. 남의 카운트다운 시계를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 자금, 해외 용어, 해외 캠페인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세우고 이끄는 자립적 교회를 세우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분은 결코 자녀들을 '통계'로 취급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목표물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프로젝트로 만들 수 없다. 2033년은 성경적인 마감일이 아니다. 슬로건을 멈추고, 나라들 가운데서 산상수훈을 살아내기 시작하라.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유일한 과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