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절 연휴에 동부에 사는 딸과 긴 통화를 했다. 서로 바빠서 간단한 안부와 기도만 나누는 우리는 모처럼 여유롭게 통화했다. 딸은 어린 시절 감사한 일들, 숨겨 둔 어린 시절 아픔과 하나님 축복을 누리는 오늘을 나눴다.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울고 웃다가 읽은 책들을 나누었다.
독서광 딸과 종종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올해도 60권을 읽었단다. 대견하고 부럽다. 책에 관해서 나누는 딸과의 대화는 늘 풍성하다. 우리는 장르와 시간에 제한없이 책들을 나눈다. 읽은 책들의 줄거리, 감상 그리고 비평 등등... 그날 우리는 'H 마트에서 운다(Crying in H-Mart)'라는 책을 나누었다.
'H 마트에서 운다(Crying in H-Mart)' 는 ‘미셸 자우너’라는 한인 작가가 쓴 자전적 수필집이다.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어머니와 유럽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혼혈아다. 그녀의 책이 뉴욕 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55주 동안 올랐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추천해 화제가 되었다.
'H 마트에서 운다(Crying in H-Mart)' 는 미셸 자우너의 성장과 치유를 담은 회고록이다. 미셸 자우너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성장했다, 정체성 혼란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의 일반적 현상이다. 필자도 한국에서는 미국 사람이고, 미국에서는 한국 사람이다. 주변인의 삶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미셸 자우너는 미국인 엄마들과는 너무 다른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리 엄마만 왜 이렇지?”라는 질문을 품고 성장했다. 미국인 엄마들은 자식에게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고 자존감을 지켜 주려고 애쓰지만, 자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 기준으로 잔소리하고 다그쳤다.
미셸 자우너는 엄마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엄마 음식으로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엄마는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여주셨고, 아플 땐 죽을 끓여 주셨다. 그래서 미셸 자우너는 아프면 죽을 먹고,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고, 여름철에는 팥빙수를 먹으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미셸 자우너는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며 어머니를 떠났다. 삶의 성공과 실패를 겪고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미셸 자우너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한데 엄마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미셸 자우너가 25살 때 엄마가 암에 걸려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에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병든 엄마를 보며 절박한 마음에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자우너는 엄마가 복용하는 약과 먹은 음식을 적었다. 살아생전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남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린다. 엄마는 기적적으로 딸의 결혼식까지 버텨주셨지만, 곧 돌아가셨다.
'H 마트에서 운다(Crying in H-Mart)' 의 첫 문장이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 마트에만 가면 운다(Ever since my mom died, I cry in H Mart)”이다. 이 첫 문장에 독자들은 울컥한다. 나에게도 소천하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울컥하는 지점이 있다.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풋김치를 보고, 섬기셨던 시골 교회를 보고,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성경 구절과 찬송을 보면 울컥울컥 울컥한다.
‘먼 훗날 아들과 딸은 어디서 아빠를 추억할까?’를 생각했다. 아빠와 함께 읽은 책들을 보고 울까? 함께 청국장을 먹던 것을 추억하고 울컥할까? 먼 훗날 아빠와 함께 기도하던 날들을 추억하며 울컥하고 기도하면 좋겠고, 예배당에서 말씀 듣던 기억에 울컥하면 좋겠다. 그 통화 이후로 아들과 딸은 어디서 울컥할까? 이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 꽈리 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