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출애굽 광야에서 오직 만나만 가지고 광야 40년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분명 원망 꺼리입니다. 결국 그들은 원망합니다. 민수기 11장 5절에 보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 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그랫더니 배터지도록 메추라기를 한달간 내리게 됩니다.(민11:5) 이후 40년간 그들은 오직 만나만 먹으며 광야 생활을 이겨 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광야에 만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 만나가 가진 신비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신비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광야 같은 이민생활에 그날의 만나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만으로도 우리의 필요를 충분하게 채우고도 남을 은혜를 보게 됩니다. 이 만나가 가진 신비성을 3가지 정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만나는 김치같습니다. 한국사람에게 김치가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좋아해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특히 다양한 종류로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개발된 김치종류만 무려 192종이나 됩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이와 같았습니다. 성경에 만나는 쌀가루와 밀가루 같은 양식이었습니다. 근데 이것을 다양하게 적용해 보고 만들어보니까 굉장한 양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16:23을 보면 삶아 먹거나 구워 먹거나 눈처럼 녹아 스프(출16:21)로 끓여 먹을수도 있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 시킬 수 있는 팔색조 메뉴였습니다. 성경(신8:3)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날의 만나로 비유합니다. 어제 들은 말씀이 오늘 또 다르게 다가와 나의 상황을 만지고 채워줍니다. 말씀은 절대 한가지 맛만 내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게 묵상하면 할수록 깊은 맛을 우려내 다른 상황 속에서 늘 특별하고 풍성하게 채워주는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말씀을 단순하게 보는게 아니라 계속 응용하고 깊이 보는 습관이 생길때 하나님의 말씀 하나면 광야생활이 절대 두렵지 않게 됩니다.
둘째 만나는 하나님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줍니다. 만나를 당시 신학자나 식물학자등은 광야식물에서 추출되는 진액종류나 당시 기온차등과 함께 만들어진 광야의 특별한 식품류로 분류하며 자연발생적 이라고 하지만 이 만나를 항상 한오멜 (한그릇)이상 담으면 상하거나 녹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육일째 되는 날은 칠일분과 함께 두오멜(이틀치)가 자동으로 담아졌습니다. 마치 우리가 담지만 하나님이 내 앞에서 내 상황을 봐가면서 퍼주는 것 같은 신비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말씀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 필요한 말씀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가진 능력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말씀 이든 하나님이 지금 나의 상황을 나보다 더 잘알고 내가 느끼지 못하는 필요까지 채워주는 섬세 한 분 이란걸 깨달으려면 매일 말씀앞에서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필요한 말씀뿐만 아니라 느끼지 못하는 필요까지 채워주는 하나님의 섬세함을 한번 경험해 보면 마치 하나님이 매일 내옆의 조언자같이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것입니다.
셋째 만나는 그날의 만나입니다. 출16:18-20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사람에게는 항상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서 발생했던 안좋은 경험 때문에 생기는 염려와 보장되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이루어내는 불안감입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항상 오늘의 만나를 내일로 저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근데 저장된 만나는 내일이면 냄새가 나거나 녹아 없어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광야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나가보면 어김없이 거기 만나가 있었습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원리 입니다. 한번의 은혜로 계속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왜 번거롭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마르거나 잊혀지거나 날아가면 나는 왜 맨날 이렇게 부족할까? 내신앙은 왜 연약할까? 생각하는데 은혜는 반드시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날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날의 은혜로 유한하게 주시는 진짜 목적은 매일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은혜의 원천을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새로운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날의 은혜는 그날의 족합니다. 이걸 위해 오늘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나는 광야생활 입니까? 만나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깊이보면 깊이볼수록 하나님의 생각을 보게 됩니다. 그 생각을 또 묵상해 보면 하나님은 정말 나를 원하시는구나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깨닫게 됩니다 .광야 만 보면 “왜 하나님이 나를 이런곳에…” 하며 원망이 되지만 그날의 만나를 보면 “아! 하나님은 역시…” 감탄과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 오늘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