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 얼굴 없는 병사 결혼식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빚어낸 비극을 여실히 드러내는 참혹한 어느 병사 한 장 결혼사진은 온 미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퍼플하트’를 포함한 무공 훈장으로 장식된 군 예복을 입고 서있는 예비역 해병 병장 ‘타이 지겔’은 머리카락은 물론 심지어 코와 턱조차 찾을 수 없으며 어떤 표정도 찾을 수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이년 전 자살 폭탄 테러 희생자였으며 그 때 화염이 그 얼굴 피부를 빼앗아 갔다(중앙일보)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옆에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신부가 서 있었습니다. 마치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결혼사진에 모든 미국인은 놀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라크 전쟁 참혹한 실상에 대해도 놀랐지만, 그 참혹한 결과 희생자인 병사를 자신 남편으로 받아주는 신부 결정에 놀란 것입니다. 사실 이 병사는 이 신부를 포함한 모든 미국인을 이런 참혹한 비극에서 구하기 위해 전쟁에 대신 나가 싸우다가 희생 당한 것입니다. 이 참혹한 비극은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문제이었지만 병사가 대신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짐을 함께 나누려고 할 때, 그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짐은 우리 모두 것이기 보다는 바로 당사자만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병사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가 당할 아픔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함께 나눌 아픔인 것입니다.

장애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저는 두 살 때 장애를 입었지만 장애를 입을 만한 아무 잘못은 없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도 별다른 큰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장애인은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 문제이며 함께 나눠야할 짐인 것입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제가 아무 잘못과 이유 없이도 장애인이 될 수 있었듯이, 그것은 동일하게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저는 장애를 입기 전에는 장애와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장애인이 장애를 입기 전에 장애와 관련이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애는 누구에게나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장애는 인류의 죄 댓가로 누군가는 받아야하는 고통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사실, 사진에서처럼 얼굴에 화상을 입어 이 정도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와 입 등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 되면 주위 사람의 안타까와하는 마음은 둘째라도 본인 마음은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 모습을 비관하게 되며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누군가가 도와주려고 다가와도 방어벽을 세워 그 사랑을 거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 희생자인 병사 경우에는, 그 장애를 받아주는 신부 사랑의 결단이 아름답고, 또 그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병사 내적인 자기 극복이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살 폭탄 트럭으로 주위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가운데서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 은혜인 것입니다. 그 불길 속에서는 노력했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을 극복하고,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당당한 이유가 있어도 신부가 떠난다면 아름다운 결혼은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아름다운 결혼사진은 하나님 은혜 모습인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하나님께 맡겨야만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장애인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 된다면 그가 바로 장애인입니다.

저 자신도 한국에서 아무 희망이 없이 지내다가 하나님 도움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모든 생활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버스를 4-5시간 타며 미국 신학대학원(Golden Gate Seminary)을 다니면서 M.Div 과정을 졸업했습니다. 그 후에 Biola University에서 다음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지금 돌아 볼 때, 저 같이 형편이 어렵고 장애인인 제가 미국에 와서 공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일반인들도 부러워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 상황은 그들보다도 더 열악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검정고시 출신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휠체어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제 계산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미래가 두려웠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많은 장애인에게 가장 큰 무서운 적은 ‘골리앗 공포증’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적이 너무 크기에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싸워보고 지면 후회라도 없을텐데, 아예 겁먹고 도전하지 않으며, 인생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 능력을 의지 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입니다. 만일 강하기 때문에 자신 능력을 믿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강하지 않고 약한 것입니다.’

만일 장애가 있어 자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능력을 힘입는다면 그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건강하기에 자신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 도우심을 외면하고, 그 능력을 힘입지 않는다면, 그래서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장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