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폭설이 오는 북동부에 비할 추위는 아니지만, 시애틀만의 특유의 쌀쌀함은 영하의 날씨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게 합니다.
영하의 혹한 때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 준비하고 몸을 따뜻하게 합니다. 언 몸을 녹이려 따뜻한 차를 마시고, 건강을 챙기려 보양식을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워싱턴은 혹한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추운 것도 아닙니다. 그 경계가 매우 불분명합니다. 비도 폭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은 과거의 보슬비도 아닙니다. 강우량이 눈에 띄게 늘었음에도 여전히 워싱토니안들은 과거의 습성대로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줘도 아이들은 잘 쓰려 하지 않습니다. 다 안 쓰는데 나만 우산을 쓰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후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감기에 더 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현대 미주 한인 교회들은 핍박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종교개혁 시대처럼 종교가 국교였던 시대를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면역 체계가 매우 불분명합니다. 확실하게 환난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영적 방패를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교회와 멀어진 채로 살지도 않습니다.
마치 시애틀에서 적당한 추위 속에 더 감기에 잘 걸리는 것처럼, 적당한 신앙의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영적 면역력을 잃고 작은 것에 실족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년을 지나며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상황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시대를 살면서 영적 면역력을 잃어버려 방심하다 실족하지 않을까 하는 시대적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신앙생활, 종교생활 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적당한 추위일지라도 몸을 철저히 보온해 주어야 하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다 철저한 경건 생활로 우리의 영혼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년을 지납니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처럼 주님 눈만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