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 너무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로마에 갈 기회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전하는 일로 그 지역 유대인들에게 장사가 안된다고 영업 방해죄로 고발을 당합니다. 그래서 결국 죄없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5:2~3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합니다(행 25:21). 그래서 바울은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로마까지 호송되어져 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7:9~11에 보면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영감(靈感)에 겨울을 지나고 떠나자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같이 백부장이 선장과 선원들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떠나자고 했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제국시대로 백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길을 떠났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안개와 흑암속에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산더미 같은 폭풍우에 밀려 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들 열나흘 동안 잠도 못자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가슴을 졸이며 지내다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고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고 했습니다(행 27:18~20).
이때 바울은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행27:21~26)”했습니다.
열나흘 쯤되는 밤에 아드리다 바다에서 이리저리 파도에 쫓겨 다니다가 밤중 쯤되어 사공들이 육지가 가까워지는 육감으로 물을 재어보기 위해 줄에 추를 단 자같은 것을 바다에 늘어뜨리는데 이십 길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길은 보통 180cm라고 합니다. 조금 더 있으니 열다섯 길이 되니 점점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29절에 보면 암초에 걸릴까하여 배 뒷전(고물)에다가 배를 움직이지 않게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사공들이 도망하기 위해 뱃머리(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하면서 거루(구명정)를 바다에 내려놓습니다. 이것을 본 사도 바울은 이들이 여기 없으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소리치니 군사들이 거룻줄을 잘라서 그 배마저 바다에 빠뜨리고 맙니다.
날이 새어가니 바울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34절에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었다고 합니다.
이때 배에 있는 사람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직 배가 어느 곳엔가 정착하지 않은 상태였어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졌기 때문에 안심하고 모두 바울이 시키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한배를 타고 험준한 죄악 세상의 파도를 헤치고 가고 있는 자들과 같습니다. 이 배에 목자를 세우시고 그 목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고 사도바울과 같은 목자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37절에 보면 이백칠십육 인이라고 숫자를 기록하신 이유는 많은 인원임을 밝히기 위함과 떡을 나누어 먹이기 위해 숫자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 불리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했고 날이새어 가는데 어느 땅인지는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여 배를 그곳에 댈수 있을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바람에 밀려 해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양쪽에서 거친 파도가 밀어 붙이니까 배가 견딜 수 없이 깨어지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처럼 배에 탄 이백칠십육 명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들을 성취시키시면서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하는 말을 100% 하나님이 하신 말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배가 섬이든 육지든 그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목적있는 계획이 이런 섭리를 위하여 나타났던 것입니다.
배가 파손되어가니 로마 군사들은 바울을 미리 죽이자고 합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법에는 군인이 죄인을 호송하다 놓치면 그 호송병이 대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동안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모든 사람이 다 육지에 올라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행27:43~44).
그 배에 탄 선원들이나 장사꾼들, 군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양떼입니다. 그곳에 사도바울이라는 목자를 세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적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배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목자인 바울의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었기에 구원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백칠십육 명이 탈 수 있을만한 배는 아주 큰 것이었을 것입니다. 장사꾼들도 있어서 그곳에 있던 물건들의 값어치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풍랑에 다 없어지더라도 중요했던 것은 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그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그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살리시는 은혜로 사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탄 배의 사람들이 멜리데라는 섬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몸이 약했습니다. 춥고 몸이 떨려 불을 지폈더니 독사가 나와 바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뱀을 털어내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죽지 않자 그것을 지켜보던 그 섬 원주민들은 바울을 사람같이 생긴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원주민 추장집에 머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던 바울은 옛 추장의 병을 고쳐 살려주게되고 그 마을의 병자들은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병들을 고침받게 됩니다.
이렇듯 목회는 하나님이 해 나가십니다. 그렇게 석 달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멜리데 섬은 모두 복음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멜리데부터 복음화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로마로 들어가는 배가 오고 로마로 가기 위한 식량을 섬 주민들이 (병고침 받고 영혼이 구원얻고,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서) 넉넉히 채워 실었습니다. 이처럼 물질은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시는 곳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리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게 붙여준 백성은 하나님이 쓰실 계획을 다 이루시기까지 함께 살리실 줄 믿습니다.
본문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배에 사도바울을 통해서 다 살리실 계획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고생과 힘겨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포함되어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