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 7:13-14)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는, 주님 주변에 5,000명 이상이 모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 때, 심지어 부활의 영광과 승천을 목격하고 난 후에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고작 120 여 명뿐 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머지 4,880명이 택한 넓은 문을 택하지 않고, 초라하고 외로운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하루에 3,000명이 초대 교회로 들어오는 기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노아 역시 좁은 문을 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모든 땅 위의 생명들을 쓸어 없애시겠다는 말씀만을 믿고, 방주를 만들며 세상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웃음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결국 땅 위의 모든 인간과 짐승들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지식도 아니고, 지적인 깨달음도 아닙니다. 알고 믿게 된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참된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약 1:22-24)
때로는 저 자신도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외롭게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다 떠나가고 온 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아버지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시는 믿음이 저를 붙듭니다.
부족한 종을 믿고 따라오는 신실한 성도들을 보면서 저의 욕심과 뜻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좁은 문을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는, 주님 주변에 5,000명 이상이 모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 때, 심지어 부활의 영광과 승천을 목격하고 난 후에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고작 120 여 명뿐 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머지 4,880명이 택한 넓은 문을 택하지 않고, 초라하고 외로운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하루에 3,000명이 초대 교회로 들어오는 기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노아 역시 좁은 문을 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모든 땅 위의 생명들을 쓸어 없애시겠다는 말씀만을 믿고, 방주를 만들며 세상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웃음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결국 땅 위의 모든 인간과 짐승들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지식도 아니고, 지적인 깨달음도 아닙니다. 알고 믿게 된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참된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약 1:22-24)
때로는 저 자신도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외롭게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다 떠나가고 온 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아버지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시는 믿음이 저를 붙듭니다.
부족한 종을 믿고 따라오는 신실한 성도들을 보면서 저의 욕심과 뜻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좁은 문을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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