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한인장로교회 서신일(67) 담임목사가 지난 13일 은퇴예배를 드렸다.
무숙자, 장애인 등 사회 소외 계층에게 누구보다 먼저 손을 뻗치려 노력했던 서 목사는 이민 온 지 3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자기 소유 집 한 채 갖지 않았다.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소외된 이들과 나누는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서 목사의 삶 때문이다.
서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엘세리토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나무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옷까지 곰팡이가 슬 정도의 낡은 집이지만 조금이나마 더 선교헌금을 위해 투자하고자 재정부담이 없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매달 두 번씩 무숙자 대접에 힘썼으며, 추수감사절 같은 국가공휴일에는 특별히 따뜻한 음식과 담요를 나누며 무숙자를 위로했다. 또, 3년 전부터 물질 후원뿐 아니라 직접적인 선교를 위해 한국의 농아사역, 지체부자유사역, 범죄자 사역, 시각장애사역 교회 및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직접 찾아 위로 사역을 펼쳐왔다.
13년 째 교회를 섬기고 있는 서자현 집사는 대학교 신입생 때 교회를 처음 와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성도로써 서 목사를 이렇게 회고했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철저히 쫓아가려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사도의 삶과 일치를 강조하셨고 또 목사님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죠”
서 집사는 “우리 목사님은 호주머니에 가진 돈 하나 없으셔도 저에게는 누구보다 부유한 분이세요”라며 눈물지었다.
50세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버클리한인장로교회에서 혼신을 다했던 서신일 목사. 서 목사는 플로리다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북가주 큰 식당을 경영하며 한 때 ‘부자 장로님’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부를 축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50세가 다 되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모든 부를 내려놓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버클리의 작은 개척교회를 세웠다.
이후 목회와 함께 소외계층 선교에 앞장섰다. 그의 모든 삶과 목회생활에 동행했던 서영희 사모는 “처음에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목사님의 믿음과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순종했다”고 말한다.
마지막까지 성도들에게 헌신과 신앙의 삶을 가르쳤던 서 목사는 지난 은퇴예배에서 역시 ‘경산 아름다운교회(시각장애인교회), 대전 큰사랑교회(시각장애인교회), 하남 쉼터의집(중증 지체 부자유교회), 천호동, 강서구, 영등포 독거노인 및 무숙자 등’ 지속적으로 구제해야 할 교회와 소외 계층 11곳을 남기며 계속적인 교회의 지원과 관심을 당부하는 등 소외된 이웃 사랑에 대한 선교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숙자, 장애인 등 사회 소외 계층에게 누구보다 먼저 손을 뻗치려 노력했던 서 목사는 이민 온 지 3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자기 소유 집 한 채 갖지 않았다.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소외된 이들과 나누는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서 목사의 삶 때문이다.
서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엘세리토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나무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옷까지 곰팡이가 슬 정도의 낡은 집이지만 조금이나마 더 선교헌금을 위해 투자하고자 재정부담이 없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매달 두 번씩 무숙자 대접에 힘썼으며, 추수감사절 같은 국가공휴일에는 특별히 따뜻한 음식과 담요를 나누며 무숙자를 위로했다. 또, 3년 전부터 물질 후원뿐 아니라 직접적인 선교를 위해 한국의 농아사역, 지체부자유사역, 범죄자 사역, 시각장애사역 교회 및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직접 찾아 위로 사역을 펼쳐왔다.
13년 째 교회를 섬기고 있는 서자현 집사는 대학교 신입생 때 교회를 처음 와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성도로써 서 목사를 이렇게 회고했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철저히 쫓아가려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사도의 삶과 일치를 강조하셨고 또 목사님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죠”
서 집사는 “우리 목사님은 호주머니에 가진 돈 하나 없으셔도 저에게는 누구보다 부유한 분이세요”라며 눈물지었다.
50세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버클리한인장로교회에서 혼신을 다했던 서신일 목사. 서 목사는 플로리다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북가주 큰 식당을 경영하며 한 때 ‘부자 장로님’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부를 축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50세가 다 되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모든 부를 내려놓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버클리의 작은 개척교회를 세웠다.
이후 목회와 함께 소외계층 선교에 앞장섰다. 그의 모든 삶과 목회생활에 동행했던 서영희 사모는 “처음에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목사님의 믿음과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순종했다”고 말한다.
마지막까지 성도들에게 헌신과 신앙의 삶을 가르쳤던 서 목사는 지난 은퇴예배에서 역시 ‘경산 아름다운교회(시각장애인교회), 대전 큰사랑교회(시각장애인교회), 하남 쉼터의집(중증 지체 부자유교회), 천호동, 강서구, 영등포 독거노인 및 무숙자 등’ 지속적으로 구제해야 할 교회와 소외 계층 11곳을 남기며 계속적인 교회의 지원과 관심을 당부하는 등 소외된 이웃 사랑에 대한 선교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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