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여행 속에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선교하기가 어려운 나라 중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인도에 간다는 게 흥분 반, 걱정 반이었으나, 사실 그 걱정이란 물과 모기의 싸움에서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목표가 있었고 각오가 있었기에 피곤하지 않았다.

공항에 제일 먼저 마중 나온 친구는 11억 인구에 걸맞게 많은 모기떼였다. 빈부차가 심한 나라라 하지만 캘커타의 늦은 밤거리는 영화에나 나옴직한 유령마을(ghost town) 길이었다.

Children/Youth/Adult 3반 중 나는 아이들 반에 배치되었다. 카톨릭 성당의 강당을 빌렸는데,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약 250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틈 사이를 지나며 손을 내미니 쭈뼛하던 아이들이 너도 나도 손을 내민다. 아니 매달린다고나 할까. 일행 중 한 분이 “왜? 당신에게만 아이들이 유독 달려드는가?” 할 정도로 나를 따른다.

‘울컥 눈물이 난다’ 이 아이들에겐 사랑이 필요하구나! 떠나기 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그 사랑을 나누어주고 오겠다고 했던 약속을 조금은 이행했다고 할까. 그 후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울꺽 울음이 쏟아지곤 했다.

그 날 저녁 거리선교를 나섰다. 슬럼(slum)동네에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먼저 복음을 전하고, 순서에 따라 어린아이들의 고전무용, 청년들의 댄스, 성극 등을 했는데 그 동네에서는 최초의 무대공연이라 한다. 놀라웠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 복음을 경청하고, 무대공연을 구경했다.

광장이 꽉 찼다. 아주 잘된 기획이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도 잘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인도인들은 조용한 성품과 깊이 생각하는 두뇌를 갖고 있으며 똑똑하다. 수 천 년을 이어온 힌두, 그것이 우상이며,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게 인도할 수 있다면......

청신호가 켜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구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눈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거의 끝날 즈음 문 장로님이 나를 부른다. 무대 위에 올라 간증을 하라는 명령 아닌 주문. 한국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한 방글라데시 폴 목사님이 통역지원을 오셔서 우리 팀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폴 목사님의 통역에 힘입어 내가 직접 체험한 기적을 무대 위에서 얘기했다. 나는 작년 8 월부터 허리 디스크로 인하여 아침에 세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심한 통증을 갖고 있다.

문 장로님의 인도 선교 요청에 도저히 응할 수가 없었다. 이 몸으로 어떻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며,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결심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다.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최근엔 20 년 이상 다니던 직장을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주시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축복이 있었다. 그 뜻은 주님께서 어쩌면 나에게 편안하게 선교를 다녀오라는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 장로님의 뜻에, 아니,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날 밤, 나는 기도했다. “나를 사랑하시는데, 나를 선택하시는데,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세수를 하는데 허리통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루 하루가 달라지고 있었다. 치료받은 것도 아니고, 약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2주쯤 되었을까, 그렇게 심하던 통증이 완전이 사라졌다. 기적이었다. 수술까지도 고려하던 허리였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얼마 후 나는 깨달았다. 주님께서 또 한번 나를 사랑하셨다고. 인도에 갈 수 있도록 고쳐주셨다고.

이 이야기를 그 무대 위에서 하였다. 문 장로님은 기도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무대위로 올라오라고 외치신다.

배가 아픈 사람, 머리가 아픈 아이들, 다리가 아프고, 공부가 안 되는 아이들, 청년들, 몸이 약한 어른들, 우리는 그들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씩, 세 사람씩 올라오고, 또 올라오고, 끝도 없이 올라온다.

나의 간증역할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은 것이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또 다시 희망을 얻는다. 하나님께 인도할 희망. 십자가를 당당히 세운 배 ODMS 배 ‘노아’를 타고 순덜반 섬에 도착해서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는다.

문화충격! 타임머신을 타고 500~1000년의 과거로 도착한 착각의 환영행렬,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날은 순덜반 두 번째로 mission school 이 탄생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렇게 ODMS(열린 문 선교회) 는 학교를 세워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바라사트에도, 미얀마에도, 라오스에도, 중국에도, ODMS의 학교가 세워졌다. 비록 인도만 보고 돌아왔지만, 오는 비행기안에서, 그리고 돌아온 후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끌고 가다시피 나의 병을 고쳐 주시면서까지 ‘인도’로 인도 하셨을까? 나는 일주일, 이 주일 시간이 지날 수록 깨닫기 시작했다. 아! 나에게 임무를 주시려고, 사명을 주시려고, 나를 끌고 가신 것이구나! 아니, 나 같은 사람을 주님의 도구로 쓰시려고 세심한 인도하심을 체험케 하신 것이었다. ODMS 멤버로 캘커타에 선교센터를 짓는데 도우라고 끌고 가신 것이었다.

주님의 목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참으로 감사의 선교여행이었으며, 은혜의 선교여행이었다. “할렐루야!” 이제 나는 새로운 목표, 주님의 목표를 향해 기도하고, 실천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함께 주님의 은혜 안에서 칼카타에 선교 선 터를 짓지 않겠습니까?

(글: 열린문선교회 김안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