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란 늘 입으로 고백되고 삶 속에서 실천돼야 한다”
영국 노예제 폐지운동의 리더였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실제 삶의 이야기에 바탕하고 있는이 영화는 18세기 후반에 노예 매매 제도를 종식시키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그의 영웅적인 노력의 연대기이다.

영화는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이상주의 정치인인 윌리엄 윌버포스의 20대와 30대 시절을 그려낸다. 윌버포스는 정치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잘 나가는 커리어와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의 목사이자 개혁된 노예선의 선장으로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작사가인 존 뉴턴은 윌버포스에게 신께 봉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을 무기로 불의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의 말에 자극 받은 윌리엄은 노예제도를 이슈화해 뜻을 같이하는 세력들을 결집해 나간다. 투쟁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은 윌버포스는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영국 전역에 노예제도 폐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윌리엄 윌버포스의 마음과 영혼을 담은 듯한 노래인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다. 그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하면서 당당하게 맞서 싸울 때, 이 노래를 숭고하게 부르며 혼신의 힘을 쏟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나온다. 노래는 아름다우면서도 숭고한 선율과 함께 노예제도 폐지라는 역사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영국 반노예제도의 선구자… ‘윌리엄 윌버포스’
윌리엄 윌버포스는 1759년 영국 헐(Hull)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 칼리지를 졸업하고 정치에 입문해 21세 때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대 후반, 윌버포스는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했다.

1787년 10월 28일 27세의 젊은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러한 윌버포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해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렀다. 그의 영향으로 영국의 젊은 국회의원 3분의 1이 복음주의 기독교 교인이 되었다.

그 당시 영국은 노예 무역을 통해 국가 수입의 3분의 1을 얻고 세계 최고의 해군력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마구 잡아들였다. 그는 암살 위협, 중상 모략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매진했다. 결국 의회에서 싸워온 지 50여 년 만에 노예 무역 폐지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찬송가 405장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같은 죄인 살리신)’

국내에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송가 405장)’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찬송가이지만 기독교 신앙 여부에 관계없이 세계인들에게 애창되고 있다. 세계적인 애창곡이 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태어난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던 영국인 존 뉴턴은 1748년 5월 10일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을 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노예 사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뉴턴은 그 후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예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나중에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을 구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으며 그의 가사에 지금의 곡이 붙은 것은 1830년경의 일이라 한다.

2007년 미국에서 개봉돼 3주 만에 1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가 감독했고 윌리엄 윌버포스는 이안 그루퍼드(Ioan Gruffudd)가 맡아 열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