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유다의 믿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와 후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베드로나 유다나 실수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주님을 부인하는 죄도 심각성을 따진다면 엄중히 다루어야 할 부분일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베드로를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했다…베드로가 맹세하고 부인했다…나중에는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닭 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주님을 진정으로 순종하면서 따랐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며 회개했다고 기록합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어떠했는가…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다…그리고 은 삼십을 도로 갖다 주었다…기록합니다.

두 단어의 차이점을 봅니다…심히 통곡했다…그리고 스스로 뉘우쳤다. 원어로 찾아 보니까 통곡했다…는 것은 아주 울부짖듯이 그렇게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뉘우쳤다는 말은 그저 후회했다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저 뉘우치기만 했기 때문에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가슴을 치면서 회개를 한 경우이고 유다는 스스로 뉘우친 다음 목숨을 끊는 경우로 나뉘어집니다. 얼마나 큰 차이인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가 만약에 베드로와 같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면 어쩌면 가룟 유다도 놀라운 제자의 삶, 전도자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만큼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회개의 의미는 깊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평생 동안 주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는 22장 6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눅22:61 )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주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다고 기록합니다. 회개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눈과 주님의 눈이 마주치는 것…주님의 눈이 나를 바라보실 때 나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님의 눈을 맞추는 것…그것이 바로 회개가 아닐까…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나의 삶을 추적해 오시는 하나님의 눈과 마주치는 그 순간이 바로 회개의 순간이 아닐까…묵상해 보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그냥 뉘우치고 마는 삶이 아니라 회개하는 삶이 축복을 받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스로 뉘우치고 생을 마감했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회개한 후에 베드로는 오순절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하고 살아 있었다면 베드로와 함께 오순절의 역사를 체험하고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행여나 가룟 유다처럼 그저 뉘우치고 마는 일들이 계속 쌓여만 가는 하루 하루의 삶은 아닌가…내가 진정으로 주님 앞에 내려 놓고 회개해야 할 부분은 없는가…깊이 묵상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긍정과 부정의 차이입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을 보면서 이 결과가 그냥 하루 아침에 나타난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마도 가룟 유다의 성향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부정적인 자세로 사는 삶이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와는 참으로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관점입니다. 왜 그럴까…그것은 인간이 바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칭찬의 말을 들으면 없던 힘도 내어서 일을 합니다.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그 한 마디의 부정적인 말 때문에 자살에 이르기까지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일생을 보면 참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실수가 많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 놓겠다고 고백하는 긍정적인 자세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했던 말들을 보면 다분히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돈궤를 맡은 재정담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값비싼 향유를 깨뜨린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요12:4~6 )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 이러라

우리가 얼마나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의 그러한 부정적인 성향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리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 보기 원합니다. 나의 언행에 있어서 베드로와 같이 긍정적인 자세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