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의 미국 이민의 역사가 100년을 넘어섰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100여 년 전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국 땅에서 교회를 세우고, 모국어를 가르치며 자녀들을 어엿한 미국의 주역들로 키워냈다. 지금은 우리 한인 이민 1세가 미국 정부의 고위 관직에 임명되고,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가 하면, 2세들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주류사회의 당당한 인물들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민 초기에 피부 색이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유럽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도 비 영어권의 경우 차별을 당하지 않은 민족은 없었다. 중국인들은 교량이나, 철도, 터널, 등의 위험한 공사를 하며, 수없이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그 피의 대가로 차이나 타운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힘든 인종 차별의 길을 걸어 온 민족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 온 흑인들이었다. 1619년부터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의 250년간을 노예로 지낸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흑인들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톤 D.C. 링컨 기념관 앞에 약 25만 명이 모여, 인종 차별을 철폐하라는 한 목소리를 낼 때까지도, 공공 교통편이나, 식당, 심지어 공립학교에서 조차 백인들과의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가하면, 많은 주에서 투표권마저도 인정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에서 승리하고, 흑인 노예 제도를 철폐했음에도 백년 가까이 인종 차별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노예제도 폐지와 관습 철폐를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정치인으로의 모든 야망을 포기하고 투쟁하다가 그가 죽기 전 마침내 대영제국과 모든 영 연방 국가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는 모습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로도 상영되고, DVD로도 대여되고 있는 Amazing Grace 라는 영화가 바로 윌리엄 윌버포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이 이미 100만 명이 넘어섰고, 농촌에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인 자녀들의 비중이 이미 10%를 넘어서고 있다는 통계이다. 이제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니 하는 소리는 머지 않아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학설이 될 듯하다. 사실 단일 민족설도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중국의 한족과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사대 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들이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원래 중국은 한족이 중국의 중심에 있다고 보고, 주변국들을 모두 오랑캐 취급을 한 바, 내몽골 지역의 선비족을 동호(東胡), 고구려를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이 두 이름은 같은 족속으로 취급되었고, 실제로 고구려는 선비족과 국혼을 맺을 정도였다. 조선 초 태종실록에도 보면,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는 몽골 족과 조선인들이 함께 혼인을 하고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몽골, 말갈(만주족), 숙신, 선비족과 고구려의 후예들은 같은 언어와 풍습 속에서 형제와 같이 지냈던 민족들이었던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비교적 순탄한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미주 한인 교포들이 LA 흑인 폭동을 겪으며, 타 인종 사회와의 유대와 화합을 추구해 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히스패닉 사회와도 이러한 결속과 화합은 두 소수 민족 전체를 위해서도 큰 유익이 되고 있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백인 층 다음으로 부유한 아시안 한인 교민들이 다른 소수 민족들을 껴안고 지원하며 공존하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에서도 보면, 2세들의 타인종간 결혼이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를 본다. 한인들 간의 결혼만을 주장한다면, 2세들도 잃고, 미국 사회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인종 차별은 죄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약 2:8-9) 사도행전17장 26절에도,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라고 기록된 바, 모든 인류가 한 혈통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다. 우리 한인들부터 믿는 자들부터 먼저 인종 차별의 벽을 헐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님의 1963년 연설(I Have A Dream)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귀한 메시지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 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 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지사가 늘 연방 정부의 조처에 반대할 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거 부한다느니 하는 말만 하는 앨라 배마 주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 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니아의 앨러게니 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조지아의 스톤 마운틴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이 말입니다.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