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서로 흰 머리카락을 뽑았습니다. 아이들도 가세하여서 흰 머리카락 퇴치 전쟁을 치렀습니다. 한참 뽑다가 서로가 지친 나머지 공통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너무 많아서 못 뽑겠어요! 그냥 놔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울을 보며 듬성 듬성 나온 흰 색깔의 머리카락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니까 검은 머리카락이 훨씬 많고, 탈모현상이 없으니 아직은 젊은 측에 속한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 봅니다.

이제 남은 세월보다는 지나온 세월이 더 많은 45세, 눈동자도 약간씩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흐릿해져서 가까이 있는 글자가 춤을 추기도 합니다. 아내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아랫배가 8개월이라고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호르몬의 불균형인지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밤새도록 “잠 못 이루는 산호세의 밤”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2008년 새해 첫 날, 신년금식기도회를 위하여 산을 오르기 전 사무실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인생경기의 하프타임이 지나고 10분 휴식도 끝난 시점의 중년나이, 이미 후반전이 시작된 시점입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새해 포부도 있지만, 이제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험난한 인생길을 성공적인 삶으로 영광의 흰 면류관을 쓰고 계신 노 목회자, 노부부, 노인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가 있었지만 그들의 처절한 싸움과 노력이 없었던들 어떻게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100인의 유명인사들에게 물은 책이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있어 언제, 어떨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까?”70% 정도의 공통된 대답이 있습니다.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던 때, 가난한 시절 아내와 함께 반찬 없는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기도를 드리던 때, 암을 이기고 새롭게 창가의 햇빛을 맞이했을 때의 상쾌함, 아침에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가장 평범한 것을 경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늙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 늙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늙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고 봅니다. 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육체는 잃게 되겠지만 잃는 것만큼 얻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안목, 감사, 평안, 천국의 소망, 마음의 여유, 지혜로움 등...

겉을 치장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늙으면 아무리 고운 화장품을 써도 피부에 먹혀 들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변화는 한계가 없습니다. 언제나 새로움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헤어짐의 고독과 아픔 속에서도 세상 너머의 천국소망을 바라보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죽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입니다.

2008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작년 새해처럼 희망을 갖고 많은 계획과 일들, 새로운 각오들을 가지고 출발할 것입니다. 저도 희망을 품고 작지만 큰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새해에는 잘~ 늙어가자!”로. 무엇이 잘 늙어가는 걸까 성경을 펴 보았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1-32)

의로운 길로 가는 것, 화내지 않는 것,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그러기에 잘~ 늙어갈 필요성이 있고, 잘~ 늙어갈 수 있도록 마음판에 새겨 봅니다. 나의 인생 목표는 “잘~ 늙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