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부터 새로운 신앙훈련 과목을 도입했습니다. 13주 과정의 이 과목은 숙제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저 듣기만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미리 예습을 해야 하고, 배운 바를 복습할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 실천도 해야 합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삶을 훈련하는 과목입니다. 이미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하고 있는 “경건의 삶”이라는 생활훈련과목입니다. 처음에는 일곱 명으로 시작을 했는데, 세 명은 중간에 포기를 하고, 네 명만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 사이에서 그 과목은 숙제 많고 어려운 과목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문은 곧 그 과목만은 피해가라는 조언 이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바쁜 이민 생활, 유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성경공부 시간에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예습하고 복습하고 실천하고 적용까지 하라고 하는 것은 역시 무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그 과목을 가르치는 다른 교회의 교사 한 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그 과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힘든 과목, 피해가는 과목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예상과는 달리 그 교회에서는 그 과목이 최고 인기과목이라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받아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리더로 자라게 된다고 하여 서로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제게는 다소 충격으로 들렸습니다. 왜 다를까?

생각해 보니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은 착하기는 한데 신앙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예배시간에 늦는 분들이 많고, 신앙훈련에 등록하는 분들도 적고, 등록하여 공부를 해도 편하게만 공부하려 하고, 궂은 일,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는 등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편입니다. 착하기는 한데 말입니다.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답은 저도 잘 압니다. 역시 내 문제였습니다. 저는 남에게 부담을 주기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고, 남을 무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무슨 일을 시키는 일을 잘 못합니다. 어지간 한 것은 내가 해 버리고 맙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착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착하기는 한데 리더쉽이 약하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착하다는 기준도 순전히 내 기준일 뿐입니다. 믿을 것은 못되지요.

착한 목사와 옳은 목사는 다릅니다. 착한 것도 좋지만 이제는 옳은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착하기만 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오히려 규모가 없고 버릇없이 굴 수 있습니다. 그저 착하기만 한 목사 밑에서 자라는 교인들도 스포일(spoil)되기 십상입니다. 안 되는 조직일 수록 리더의 인심이 후한 법입니다. 직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불합리한 것도 지적하지 않습니다. 마냥 친절하기만 하고 잔소리 한번 안 하는 선배나 상사를 경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당신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자신 밖에 모르거나.

인기 있는 목사보다, 착한 목사보다 이제는 옳은 목사가 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옳은 목사에게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원칙을 묵묵히 지켜나갑니다. 물론 앞뒤 꽉 막힌 원리주의자가 되자는 말은 아닙니다. 기준을 정하고 원칙을 세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종종 마주치게 되는 고난의 비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꿋꿋히 버티며 전진할 수 있는 신앙의 근력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부터 제 책상 위에 아예 구호를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마음을 다지자고 말입니다.
“원칙대로 하자!
원칙대로 하자!
원칙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