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언젠가 체코의 프라하를 갔었는데 그 곳의 유명한 다리 위에는 여러 그림이 새겨져 있는 동상이 있었는데 유난히 한 군데만 반짝였습니다. 그래서 보니 사람들이 바로 그 부위만 만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만지면 아주 좋은 행운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그림을 자세히 보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동판 그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어디서 듣고 그것을 만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듯이 거짓선지자들 때문입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저도 한 때 믿지 않던 아버님의 말을 듣고는 상당히 엉뚱한 것을 진리인 것 처럼 생각하며 살았드랬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아침에 휘파람을 불면 안 좋다. 뱀이 나올 테니까… 또 사람의 어깨를 만지면 재수가 없다… 그래서 제 어깨를 만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또 저희 아버님은 아침에 안경을 쓴 사람을 만나면 재수가 없다… 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경을 쓰는 사람을 재수 없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는 그들과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기독교의 지도자인 것처럼 말을 하나 그 가르침이 성경적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이단으로 분류해 놓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단들은 확실히 구분해 놓았으므로 식별이 간단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짓선지자들은 기독교 안에 있는 자들로서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그들의 모든 것을 다 가려내지는 못하지만 거짓 선지자를 가려내는 간단한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는 그들의 가르침에는 성경을 말하는 것 같아도 좁은 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제일 첫 번으로 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전에 좁은 문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힘들어도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좁은 문은 오늘 우리의 일을 희생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순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대부분이 달콤한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희생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여 주신 시간을 즐기라고 강조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케이션을 갖는 것을 인생의 최고의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도 베케이션은 반드시 가야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두 달을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선교 가는 일에 베케이션을 내 놓으라고 하면 듣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성경을 보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자기의 재산이나 목숨까지 잃으면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거기에는 믿음으로 산 영웅들의 삶이 나오는데 그들 모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토굴에서 자고 사자의 밥이 되고 톱에 쓸려죽는 일까지 당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떤 개인 생활이 주님의 일로 지장을 받는 일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니 얼마나 잘못된 가르침입니까?

두 번째는 그들의 가르침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즐겁게 사는 것을 원하지 그렇게 울고 짜고 하며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발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 속에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놓고도 기쁨 속에 살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는 진정한 통회와 자복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아주 크게 가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 안에 있는 거짓선지자들은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일조를 설교하면 시험에 드는 분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싫어하는 순모임에 대하여 설교를 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건축에 대하여 설교만 해도 시험에 드는 분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가 잘 지키지 못하는 주일 성수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시험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교회의 정규예배에 나오라는 말씀을 들으면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시험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선행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부담을 느끼고 시험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혼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싫어하고 어떤 분은 간음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것을 다 피하고 목사는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매일 같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말만 할까요?

아더핑크는 그의 책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행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양심을 질책하는 내용이 없다. 머리가 빈 교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도 없다. 청중들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도록 만드는 요소도 없다. 그들의 설교는 단지 청중들을 들뜨게 하고 자족하게 하고 그릇된 확신 안에서 만족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거짓 선지자들을 알아보는 결정적인 것을 예수님은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그래서 성경적인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서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드렸으면 우리는 금방 반석이 무엇이고 모래가 무엇인지가 쉽게 식별이 됩니다. 반석은 옳은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진리의 말씀이고 모래는 거짓 선자들이 증거하는 거짓된 말입니다. 이제 이둘 중에 어디에 집을 짓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모래성은 집을 짓기가 매우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매우 따르기가 쉽습니다. 즐기면서 살라고 하는데 뭐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선 기초공사부터 힘이 듭니다. 반석은 잘 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집이 세워지면 어떤 바람이나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 갈 때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걸리는 것이 많고 부딪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삶을 건설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세워지면 절대로 어떤 환난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성도님들이 말씀을 따르며 애써 생활을 하고 있으시다면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나의 삶은 어떤 환난에도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반석 같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무슨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주안에서 약속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절망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오래전에 보르텐이라고 하는 사람이 예일대학의 대학생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은혜를 받고 중국 선교사 지망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선교사역에 헌신을 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명문 가문의 부잣집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좋은 곳을 나와서 앞날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르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기 때문에 선교의 길을 자초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가 중국으로 가기도 전에 애굽에 들렸는데 거기서 죽을 전염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그 때 다음과 같이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무슨 낭비인가? 선교도 가기 전에 애굽에서 죽을병이 걸리다니 …. 친구들의 말을 듣고 미국을 떠나지 말아야 했어! “ 그러나 보르텐은 그런 말 대신에 죽음 직전에 친구들을 다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전혀 유감이 없는 생애를 보냈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게 대단한 헌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죽어야 하는 보르텐이 어떻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믿음이 반석이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의 죽음을 헛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약속을 믿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를 맺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무엇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든지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므로 시작한 일이 있다든지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절망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