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고 다 같은 감사는 아닙니다. 감사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저는 네가지 수준의 감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수준은 “No 감사”입니다.
다시말해 감사를 모르는 사람, 감사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늘 부정적이고, 어둡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어떤 어린아이에게 사과를 주었다고 합니다. 사과를 받은 그 어린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넙죽 받기만 하고는 고개를 돌리더랍니다. 아주머니는 그 아이에게 감사하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 물었답니다. “얘야! 어른한테 사과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 어린이는 눈을 껌벅껌벅 하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과껍질 까 주세요!” 감사하다는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과를 껍질도 안벗기고 그냥 주는 법이 어디있느냐며 말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고, 받았어도 더 안해준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두번째 수준은 “IF 감사”입니다.
“만일에 감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만일에 감사는 지금 당장에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 감사하겠다는 사람입니다. 만일 나에게 백만불이 생긴다면, 만일 나에게 취직자리를 주신다면, 만일 이 기도만 응답된다면…. 다분히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전혀 감사가 없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만일에 감사는 여전히 유치한 수준입니다.

세번째, “BECAUSE OF 감사”입니다.
“때문에 감사”입니다. 이 사람은 감사를 할 줄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분히 거래적입니다. 이 사람은 다 써 놓습니다. 장부에 기록해 놉니다. 저 사람이 결혼식때 얼마했지? 저 사람이 밥한 번 사주었지! 저 사람은 우리 애 돌때 뭐 주었지. 저 사람은 우리 결혼식때 안왔지! 받은 만큼 주고, 해준 만큼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Give and Take!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감사를 “때문에 감사”라고 합니다.

네번째, IN SPITE OF 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387년 전, 영국의 청교도들이 영국의 여왕이었던 메리 여왕의 종교 박해를 피해서 102명이 180톤 짜리 작은 배,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 플리마우쓰라는 지방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때는 1620년 늦가을 이었습니다. 65일동안 항해하면서 배에서 내렸을 때 30여명이 죽었습니다. 생존한 사람들은 또다시 동부지역의 혹한과 기근, 풍토병, 야수들과 싸워며 또 죽어갔습니다. 겨울을 지내며, 그들 중 지도자였던 브래드포드라는 사람은 이런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아 혹한의 겨울이다. 한조각의 빵도 없고, 한톨의 옥수수도 없다. 오직, 풀과 나무뿐이다. 오늘 39번째로 친구를 하나님 나라에 보냈다. 오 주여! 오 주여! 이 비참한 현실을, 이 비참한 현실을!”

그해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 인디안들의 도움으로 밀과 옥수수를 심어서 가을에 보잘 것 없는 첫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 인디안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게 된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매년 11월 네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추수감사절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