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무슬림 출신 개종자가 초등학교 때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단다. “알라(Allah)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라는 것이 정말인가요?” 그 때 선생님은 눈을 휘둥그렇게 치켜뜨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너 어쩌자고 감히 알라를 의심하는 거냐? 큰일을 당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냐?” 하고 윽박지르면서 모두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며칠 전에도 이웃 마을 어느 초등학교에서 알라를 의심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며칠 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옆 동네에 사는 어떤 여학생이 알라를 의심하다가 즉시 암에 걸려서 병원에 실려 가서 수술 받다가 죽었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에 성한 몸으로 일어나고 싶으면 절대로 알라를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알겠나?” 하더란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복종이라는 말이다. 묻지 말고 계시가 내려왔다고 하면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질문이나 의심을 하면 이미 무슬림(복종하는 자)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집트 독실한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나서 12살 때 이미 코란을 모두 암송했던 마크 가브리엘(가명)이라는 신동이 있었다. 그는 이슬람 하버드 대학이라고 하는 카이로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중동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이슬람을 강연하던 사람이다.

그가 어느 날 “이슬람 알라가 과연 기독교 하나님과 같은 신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대학에서는 그의 교직을 박탈하고 그날 즉시 비밀경찰에 체포돼 일주일간을 고문당하면서 취조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의심을 가진 댓가였고 그는 그 때부터 이슬람을 떠나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은 외국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마크가브리엘,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 도서출판 퉁크,2006, p259) 이슬람에서는 의심이 이렇게 무서운 죄가 되는 것이다.

코란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믿는 사람들이여, 여러 가지 일을 물어서는 안 된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 ...(중략)... 너희들 이전에도 어떤 백성이 이런 종류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믿음을 잃고 말았다.”(코란5장101-102절: 김용선 역)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 또한 꾸란이 계시되는 것을 묻는다면 이는 더욱 너희에게 해악이라. 그러나 알라는 지나간 것을 용서하시니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너희 이전의 한 무리가 그러한 질문을 하였으니 그들은 그로 인해 불신자가 되었노라.”(코란 5장101-102절: 최용길 역)

“알라를 믿겠습니다. 고 약속하고도 알라 일로 논쟁하는 자 의론은 알라 앞에서는 무익하다. 그러한 자에게는 알라 노여움과 엄벌이 가해진다.”(코란42장16절: 김용선 역)

같은 구절을 최용길 박사는 이렇게 번역했다. “그러나 알라에게 순종하겠다고 한 후 그분에 관한 그들의 논쟁은 그들 주님 앞에서 무익한 것으로 그분의 노하심이 있을 것이요 무서운 벌이 있을 것이다.”(코란42장16절: 최용길 역)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의심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다. 이것을 우민정책이라고 한다. 일반 백성은 아무 것도 몰라야 다스리기가 좋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알면 좋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코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언어로 번역한 코란은 이미 코란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란을 읽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선행인데 아랍어 외에 다른 언어로 번역한 코란을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식으로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기도도 반드시 아랍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랍지역 이외의 무슬림들은 아랍어를 소리나는대로 자기 언어로 표기하고는 그것을 코란이라고 읽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된다.

작년에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에 갔다가 칭젠스(중국에서는 이슬람 모스크를 이렇게 부른다)에 들렸는데 거기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노인을 한 사람 만났다. 그래서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코란이란다. 그래서 코란이 왜 중국어로 기록돼 있느냐고 하니까 아랍어 발음과 같은 소리가 나도록 중국어로 표기한 것이란다. 그래서 읽으면 그 의미를 아느냐고 했더니 모르지만 그것은 알라 말씀이니까 읽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선행이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읽는다는 것이다.

이란어(Farsi)는 아랍어와 글자가 같아서 이란 사람은 아랍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소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무슬림은 코란을 읽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의미를 아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예를 들면 독일어나 불어나 이태리어 등은 모두 영문 알파벳과 같은 글자를 쓰기 때문에 영어를 하는 사람은 그 글자를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뜻은 알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알라가 과연 전능한 신이라면 다른 언어도 다 알아들으실 것인데 왜 꼭 이해할 수도 없는 아랍어로 기도해야하고 아랍어로 코란을 읽어야 한다는 이런 원칙이 생겼는가?

위에 제시한 코란 5:101절에 보면 그 해답이 나와 있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는 구절이 바로 그 해답이다. 무슬림에게 코란에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구절이 많이 있는데도 왜 코란에는 모순이 없다고 하느냐? 고 물으면 그는 이미 무슬림이 아니다. 왜냐하면 코란을 의심하는 자는 이미 무슬림(복종하는 자)이 아니고 믿음을 버린 자이기 때문이다.

참 하나님은 그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6:7),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명백히 새기라.(하박국2:2)고 하신다.

성경 말씀은 어디에 내 놓아도 떳떳하고 오류가 없는 참 진리 말씀이기에 모든 인류가 다 읽고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하면 많은 언어로 번역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조주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일을 위해 위클리프 선교회, 성경번역 선교회 등이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읽고 확실히 알기를 원하는 성경과, 너무 분명히 알면 해가 되는 것 즉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는 코란 중 어느 것이 진리일까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다.

[본국 이란인교회 이만석 선교사는 2004년 12월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을 당하기 전까지 이란 테헤란 한인교회에서 19년 동안 사역을 감당해 왔다. 이만석 선교사는 강제 추방 이후 본국으로 돌아와 서울광염교회(일명 감자탕 교회. 조현삼 목사) 후원으로 한국이란인교회를 세웠고, 현재도 이란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