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 시대의 헌금통
예수님 시대의 성전에는 헌금통이 13개가 비치되었다. 7개는 성전세, 6개는 성전 유지비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용.
당시 통화는 그리스 주화, 로마 주화였으나, 유대인은 은의 순도를 고려하여 두로화(Tyrian Shekel, 아래 그림 참조)를 고집하였다고 한다. 종교세 유통을 일원화하고자 한 실리적 이유였을 것이다.
▲이 주화는 두로화(Tyrian Shekel)이다. |
성전세는 일년에 반 세겔로서, 모세의 율법과 계약을 맺은 20세 성인 남성은 반드시 내야 하는 헌금이다. 세겔은 알다시피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이기에, '현대인의 헌금 규모보다 얼마 안 되네?' 싶겠지만,
당시 규정 성소는 한 곳이었다는 점, 그리고 성전 징세는 비록 느헤미야 시대부터였으나 오늘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유통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현실적인 금액이다.
그런데 이 헌금자 중에 예수님의 눈에 띈 여성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예수님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가 본론의 시작이다.
▲비록 이단에서 만든 영상 캡춰이지만 가장 타당한 고증의 재연이다. 헌금통이 나팔관처럼 되어 있어 헌금 떨어지는 소리에 효과적이었음을 잘 고증하였다. |
2. 헌금통 앞에 앉아 어떻게, 무엇을 보고 계셨나
실제로 예수께서는 헌금통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때 "보고 있었다"는 동사 '에테오레이(ἐθεώρει)'는 과거시제 중에서도 미완료로서 그 이전부터 죽 그렇게 해 온 행위를 반영한다. 즉 어떤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누가복음에서의 "(그냥 무심코) 올려보다가 눈에 띈(Ἀναβλέψας δὲ εἶδε)" 뉘앙스와는 대조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설마 예수께서 저 위치에서 저렇게 보셨을까. 본문 어휘가 지지하지 않는다. |
그렇다고 이 그림처럼 저런 자세로 보고 있었다는 건 아니다(예수님이더라도 시험들기 십상). 이에 관해서는 있다가 다루겠다.
그러면 이 남다른 관찰로 무엇을 봤을까?
금액을 봤을까, 의복/ 행색을 봤을까? 문자적으로는 '어떻게(πῶς)' 헌금하는지를 봤다 했으나, 단순치 않다(누가복음에는 이 πῶς가 없음).
우린 '어떻게' 헌금을 하나?
▲바로크 시대에는 바로크답게 과부 이야기조차 사치스럽게 꾸몄다. Baroque fresco at Ottobeuren. |
과거에 공부하던 시절 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채플이 열렸는데, 헌금 바구니가 돌았다. 헌금을 하는 목사님 학우들을 보면(보려고 본 건 아니고), 만원짜리를 넣는 분은 손이 바구니 밖에서 보이는 상태에서 헌금을 떨어뜨리고, 손이 헌금 바구니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분은 얼마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의 경우 5천, 3천원을 하더라도 손을 헌금 바구니 속으로 쑥 넣으면 더 쪽팔린 것 같아, 감추려는 유혹을 떨치고, 더욱 보란듯이 바구니 위 공중에서 천원짜리를 낙하시키곤 하였다.
예수께선 이런 탈외식을 가장한 인위적인 태도를 지켜보신 것일까?
헌금은 심리이다.
예수께서는 헌금의 액수까지 거론하였다.
▲이 주화가 바로 본문 속 렙타이다. 과부들의 동전. |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본문상의 한 렙타(속격)는 한 세겔(일당)의 64분의 1 가치의 주화이다.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가장 최소 단위의 주화이다. 그래서 이를 과부의 동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통화의 절대가치가 아니라 두 렙타가 갖는 배수/분, 즉 남성들은 세겔(일당)의 절반으로 의무를 다하였으나, 과부는 두 배를 감당함으로써 생산능력을 갖춘 남성의 배분 가치를 압도하고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과부의 열악한 처지와의 이러한 대비를 누가복음에서는 '부자'와 '과부'의 대비로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현장이 보다 실제였을 것이다. 오클로스(하급의 무리)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보고 있었다"라는 동사 '에테오레이'는 단순한 주시가 아니다. 누가복음에서 이 동사를 순화시킨 이유는 이것이 수색/조사를 동반한 좀 센 관찰이었기 때문이다. 즉 헌금 액수를 거론한 것은 모든 관찰의 종합이지, 탐색의 주된 요소는 아니다. 이 관찰의 대상은 그 과부가 지닌 전체 아우라인 것이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러 왔다니까, 거지 행색을 하고 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삶을 포기한 사람 중엔 자기 할당량의 두 배를 헌금통에 넣을 정도로 준비된 사람이 없다. 그 돈으로 술을 사거나, 아니면 마지막으로 가족과 먹고 죽을 빵을 사지.
그녀는 부자들 틈에 낀 가난한 자라서 눈에 띈 게 아니라, 화려할 것 없는 오클로스(ὄχλος)들 틈에서 단연 눈에 띌만한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부의 원형으로서 고향으로 귀환한 나오미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그림은 드로잉은 좋으나 상기의 해석과 배치된다. 과부의 낯빛이 저리 잿빛이었을 리 없다. |
3. 참 과부의 원형
생활형 종교인이 아닌 이상, 구도자로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길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자기가 걸어온, 혹은 걸어가고 있는 길은 맞는지, 자기가 축성해온 수고와 시간은 효력을 발하는 지.
만약 자기 수고와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는 부자이다.
그러나 만일 수고와 시간을 박탈당한 경험이 있다면 성별의 구분 없이 그는 과부이다. 과부의 영성인 것이다.
바로 이 때 나오미는 비록 자신은 연로하나 자기를 따라온 소녀 과부 룻에게 참된 태도를 가르친다. 너의 고엘이 될 보아스에게 갈 때, 거지 행색을 하고 가서 '의무를 다하라' 청구하는 게 아니라, 기름을 바르고 단정하게 하고 가서 직접 관계를 교섭하라는 지시이다.
이 태도, 곧 부끄러운 두 렙타(λεπτὰ)의 땡그렁 소리도 당당하게 임하는 기품이 바로 '거지'와 '신부'의 차이를 가르는 것이다. 이것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우리가 헌금을 낙하시킬 때, 우린 부자인가 거지인가.
본의 아니게 우리는 거지의 행색을 자처한다.
▲이것은 The Classic Bible Art Collection (Formerly Standard Publishing) 삽화인데 헌금통 입구가 저렇게 부착 되었을 수도 있다는 고증이다. 마치 수도가 같으나 헌금통 입구는 외벽 밖이지만 헌금통은 성전 내부였을 것이라는 고증. |
4. 미문(美門), 여인의 뜰
공교롭게도 이곳은 거지짓 하던 못 걷는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켜 세운 성전 미문(美門)과 접해 있다.
예수께서 주시하고 계시던 이 장소는 성전 구조상 '여인의 뜰'로서, 당시 헤롯 성전은 '제사장의 뜰',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처럼 대중에게 종교 테마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방인의 뜰이라 하여 이방인만 들어갔던 것이 아니며, 여인의 뜰이라 하여 여인만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방인의 뜰에는 이스라엘인이 들어갈 수 있지만 이방인은 그 이상의 공간으로 넘어갈 수 없고, 남성들은 여인의 뜰에 들어갈 수 있지만 여성은 그 이상의 공간에 들어설 수 없는 그런 경계가 선명하였다.
헌금통을 두던 바로 이 '여인의 뜰'이 미문이라는 문을 접하고 있었는데, 이 미문은 '코린디안의 문'이라고도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문은 아름다운 문인데, 어찌하여 코린디안이라 불렸을까.
코린디안은 'Corinthian', 즉 고린도전/후서의 그 지역을 말한다. 고린도 지역은 거울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당시 거울은 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미문이 코린디안의 문이었다 함은 그것이 황금(사실은 동)의 문이었던 까닭이다.
이 상징의 교차에서 우리는 바울이 말한 저 유명한 노래,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ㅡ에서,
소리 나는 구리(χαλκός)는 이 헌금함에 떨어뜨리는 주화(χαλκός)와 같은 어휘로서, 돈을 떨어뜨리는 태도의 은유이며, 이 과부의 두 렙타 이야기는 바울이 가르친 이 사랑의 노래의 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렙타가 굳이 한 코드란트라 밝힌 것은 이 코드란테스(κοδράντης)가 쿼터의 유래인 것과 연관 있다. 과부의 이런 결기가 성전의 쿼터를 지탱한다는 표지.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