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하나님의 가르치신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여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먼저 정통한 복음과 진리를 온전히 깨달아서 믿고 회개함으로 진리와 성령에 의한 거듭남의 체험이 있고나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온전히 복음화된 모습이 보여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빌립보교회를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이 그곳에서 목회하게 하신 기간 동안에는 진리정통하고 성령이 계속 불같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늘소망과 은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절에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하늘의 신령한 기쁨과 영생의 벅찬 소망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과거 자기들같이 소망 없이 살다가 지옥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기도와 물질로 참여하게 하심을 기뻐하며 감사히 여겼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힘쓰고 애쓰며 선교하는 사도 바울의 선교 성과를 위하여 기도와 물질로 힘 있게 뒷바라지하는 일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가장 깊이 참여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애쓰고 수고했던 1년 반동안의 사역이 참으로 사도 바울에게 기쁨이 되고 상급이 되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본문 1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교회와 목자를 세우셔서 많은 양떼들을 교회로 불러 주시는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만 천국에 가도록 영적인 소망 가꾸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세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결실을 이루어가면서 다른 영혼들을 지옥 길에서 건져내어 영생의 생명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기대와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자기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반감을 사게 만들어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근심과 걱정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 확실한 진리의 깨달음으로 생각과 말, 행동이 완전히 변화되어 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자와 생각이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목자가 자기 생각이나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간다면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지시하시고 인도하시는 방법대로 양떼를 이끌고 그들이 하늘소망을 가꾸어 지옥 길을 벗어나서 하늘나라 들어가게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고 목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믿지 않을 수 없도록 목자를 통하여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이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는 화인 맞은 심령들도 있습니다. 로마서 2:5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완악한 심령으로 회개하지 않고 교회 다니다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날에 심판받고 지옥에 간다면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진리를 정통하게 깨우쳐주는 교회를 다니다가 지옥에 간다면 더욱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하늘 소망의 구원을 얻어서 성령에 이끌리고 쓰임 받으며 그 사람의 생활을 통하여 다른 영혼이 구원 얻을 수 있도록 선교하는 일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기도로 복음 전하는 일에 영적인 힘을 실어 주어서 구령의 성과가 늘어나도록 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얻어지는 수입으로 더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이켜 하늘 소망의 후사로 구원얻게 하는 선교 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도지를 들고나가 직접적으로 성경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초등학교도 못나왔지만 성령을 받고 성경을 읽으니 그 모든 말씀이 이해가 되고 은혜였다고 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대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전달하고 싶어서 전도지를 가지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믿고 구원 얻으세요”라는 말만 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전도지를 뿌리치고 받지도 않고 때로는 받았다가 땅에 버리고 밟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는 가서 씨를 뿌려라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열심히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그때 마늘가게 앞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마늘 파는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마늘 파는 것도 좋지만 죽으면 아무 소용 없으니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을 수 있도록 교회 나가보세요”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마늘 팔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 여자가 미쳤나, 왜 남의 장사하는데 와서 방해를 하는거야”하면서 저리 가라고 했답니다. 이 말에 이 여 집사는 “별꼴 다 보겠네. 예수믿고 천당에 가라는데 뭐가 잘못됐다고 지랄이야”라고 하니 그 마늘 팔던 아주머니는 화가나서 달려들어 머리를 쥐고 흔들려고 해서 도망을 쳤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이 여집사님은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그 시장에 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장을 지나다보니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그 마늘 장사 가게 앞을 또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 전도하려고 보니 그 가게 금고옆에 성경, 찬송이 포개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너무 기뻐서 들어가서 물었답니다.
“아주머니, 교회 다니시나봐요”하니 교회 다닌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다녔냐고 물으니 작년 이맘때쯤 어떤 미친 여자가 “천당가라는데 왜 지랄이냐”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는 겁니다. 그 말이 하도 귀에서 맴돌고 잠도 못자게 울려서 집 근처 교회에 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회 가자마다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셔서 이제 교회 다닌지 1년이 되었고 얼마 전에 세례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이 여 집사님이 전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아람군대의 장군 나아만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쳐들어가 잡아온 어린 여자아이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각해 봅시다. 문둥병에 걸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말 한마디가 그들을 엘리사에게로 이끌었고 결국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함으로써 깨닫게 되고 겸손한 자세로 순종함으로 문둥병이 나아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군사력으로 볼 때 비교도 안되는 이스라엘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고침을 통해 온 아람나라가 알게 하시고 전세계에 알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도방법의 다양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모셨다고 하면 이 소녀와 같이 세상 조건이 아무리 힘들고 억울하고 비참한 지경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합동하여 유익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저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 됩니다. 그러면 싹이나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도할 형편이 못되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메여 있지 말고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한 삶의 현장에서 자기가 믿는 진리의 신령한 기쁨을 보여주고 증거하면서 “나는 세상적인 것을 가진 것이 없고 명분이나 지위도 아무것도 없어도 예수님을 모셨기에 그분으로 만족하고 그분 안에서 영원하고 신령한 소망의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이고 활력소가 된다”는 고백과 함께 신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전도해야 합니다.
선교의 다양성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억울하게 끌려갔던 그 소녀의 선교사명 의지를 본받아야 하며, 또 그 여집사님은 무식하게 전도하며 욕도 했지만 그 사람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인해 싹이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심으로 결실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제부터라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나가서 열심히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