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일찍이었습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 새벽예배 후 사무실에 들어와서 물을 끓였습니다. 컵에 물을 붓고, 티백을 하나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향이 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사무실에 향이 은은하게 번졌을 텐데, 잠시 생각해보니, 티백을 너무나 빨리 뺐습니다. 천천히 우러날 시간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이 그 tea 한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합니다.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립니다. 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도 성실히 감당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연하고, 밍밍하고, 덜 우러난 느낌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원하는 걸까?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도 알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알고, 무엇이 믿음의 길인지도 잘 압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편안함을 더 원하고, 인정을 더 원하고,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더 원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막상 하루의 선택들을 돌아보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붙들고 살아가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치 답안지를 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다른 답을 적어 내는 학생과 같은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신앙은 어쩌면 정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 하나를 붙들고 살아내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기도해야지'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습니다'가 되고, '사랑해야지'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고는 마음이 불편합니다'가 될 때, 그때 비로소 믿음이 의무가 아니라 갈망이 되는 것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진짜 사랑에는 '해야 한다'는 말이 붙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냥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무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임재를 갈망하여 드리는 예배, 습관처럼 하는 기도가 아니라 간절히 주님을 찾는 기도, '해야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고 싶은 신앙'. 그런 마음을 주님께서 제 안에 다시 부어 주시기를 조용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63:1).
주님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으로 조용히, 그러나 깊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 삶이 천천히 우러난 차 한 잔처럼 주님의 향기로 가득해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