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다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역사는 우연으로 구성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가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성도들의 시각입니다. 그 역사의 의미, 역사의 동기와 목적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곧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이라는 영역이며, 이로서 문명의 발전과 세계질서의 변화를 조망하고 이해하려고 사람들은 노력합니다.
역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고전적인 관점에서 역사의 의미를 주장한 사람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중간에 서있는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역사를 “하나님의 도시와 땅의 도시의 갈등”으로 읽었습니다. 근대에 들어 사상가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과정”이라고 역사를 관념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했습니다. 헤겔을 비판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과 소유를 중심으로 발생한 “유산자와 무산자의 계급갈등”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역사를 조망하는 하나님의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와 계시록은 역사의 시작과 끝을 말하고 있으며, 그 역사의 의미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계시록 12장은 놀랍게도 그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의 전개를 “여자와 용의 갈등”으로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자는 용에 의해, 즉 사탄이요 마귀요 옛 뱀의 미혹에 의해 타락하였던 실패자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2장은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용과 그 하수인들을 무찌르는 종말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위엄있는 여자로 상징되어지는 구약 교회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 다스리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것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여자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지상의 사역을 다 감당하시고, 참소하는 용과 그 타락한 천사들을 하늘에서 몰아냅니다. 이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 도전하면서 죄로 종이 된 인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던 용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와 부활의 능력으로 근거를 상실하여 지상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용은 자신의 소유물로 주장하던 사람들을 이들의 복음을 통해 또 다시 상실합니다.
전쟁의 패배로 분노한 용, 즉 사탄은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남은 자손에 대하여 핍박을 시작합니다. 분노한 용 곧 마귀는 곧 신약교회인 여인을 핍박하고 물에 흘려보내려 하나, 하나님은 이 여인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 광야에서 여인은 보호되고 양육받으며, 여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인 1260일 동안 핍박과 유혹을 견딥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이 세상을 장악하고 공격하는 용과 비교할 때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용에게 다시 패배하지 않습니다. 여자의 아들이 사탄의 권세를 패배시켰고, 미가엘과 하늘의 천사들이 사탄과 그 추종자를 땅으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능력으로 여자는 용을 이깁니다. 복음의 말씀으로 사탄에 대하여 승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