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가끔씩, 한국에 들릴 때면 떠오르곤 하는 길재의 시조입니다. 산과 강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고려의 충신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서글픈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온 다음 날 목 디스크를 위해 첫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진들을 찍고, 이런 저런 위협적인 얘기들을 듣고, 드디어 첫 시술을 받기 위해 테이블에 누워있는데 한 남자 간호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보시는 장비들이 많아서 겁이 나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게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왜 그 말이 '그래도 조금은 아플 것'이라고 들려왔는지... 온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으~' 저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제 목을 통과한 주사 바늘은 컴퓨터 영상을 보며 이리 저리 움직이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에 맞춰 경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건가?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중얼거리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의료진들의 소리가 저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족히 2-3분은 지난 거 같은데 왜 이리 주사 바늘을 빼지 않는지... "이제 조금 찌릿찌릿 할 겁니다~" "엥? 끝난 게 아니고 시작이라고?" 이윽고 주사 바늘이 제 목 깊은 곳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또 그렇게 1-2분을 더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고, 병 고치려다 병 얻어 가겠네..."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편하게 놓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목을 비틀고 있었어서 그런지, 목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13년 전 전립선 암 말기 선고를 받으시고도 3년을 투병하시다가 하나님께로 가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투병하시던 바로 그 곳에 또 제가 누워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 아버지의 삶도 이런 것이었겠지... 아파도 참고, 수 많은 인생의 도전들을 맞서 싸워야 했던 삶..."
갑자기, 청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러 가곤 하던 동산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만류하시는 어머님을 뒤로 한 채 희미한 기억을 따라 30분을 걸었을까... 마침내 동산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이미 제가 알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빼곡하던 나무들도 없고 함께 기도하던 아버님도 없는...산천도 의구하지 않고 인걸도 온 데 간 데 없는 그저 낯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가신 길을 저도 가게 해주십시오. 암과 싸우시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셨던 아버지처럼, 부족하지만 저도 그런 길을 최선을 다해 가게 해 주십시오..."
갑자기 모든 것이 헛되다던 전도자의 말이 기억났습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데 아무도 이전 세대를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해 아래의 일들은 다 헛된 것이라고 말했던 전도자... 생각해보니, 제 부친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사셨지만, 하나님 아래서 수고했기에 하나님께 기억될 뿐 아니라 아들에게도 기억되어진 그런 삶을 사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좌절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삶을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길이 되어질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