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四旬節, Lent)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며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생긴 절기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 주일을 앞두고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금식 그리고 기도에 힘쓰며 경건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 사순절 기간 동안에 사순절 식사(Lent Fare)라고 하는 고기를 제외한 채소 중심의 단순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되었습니다. 9세기에 와서 이런 엄격한 사순절 제도가 약간 완화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금식은 완화되었고, 교회에 따라 구제와 경건의 훈련으로 대치하여 지키기도 합니다. 개혁주의 전통을 가진 어떤 교회들은 사순절이 가톨릭 전승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개신교회들은 사순절이 좋은 전통인 까닭에 부활절 이전 40일 동안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고난 주간이 가까워지면 제게 떠오르는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린 여인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예수님의 마음은 무거우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힘든 고난이 길인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슬픔의 길이었습니다.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피로 얼룩진 길이었습니다. 바로 그 길을 걸어가셔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제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한 여인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부어 드렸습니다(마 26:7). 예수님은 이 여인의 사랑에 힘입어 십자가를 향해 힘 있게 나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구원의 드라마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이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옥합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 왜 낭비하느냐고 분개했습니다(마 26:8). 예수님께 드린 옥합을 제자들은 허비하고 낭비했다고 분노했습니다. 그 아름답고 성스러운 사랑의 헌신을 낭비했다고 꾸짖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제자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차이는 사랑의 깊이에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깊이 사랑한 까닭입니다. 그 사랑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본 까닭에 예수님의 그늘진 마음의 고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잘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바라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보기 원하는 것만 찾아내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로 보게 됩니다. 잘 보기 위해서는 초점을 잘 맞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진 전문가들은 아직도 오래된 사진기를 사용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오래된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렌즈를 조절해서 초점을 맞춘 후에 사진을 찍게 됩니다. 렌즈를 조절해서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더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통찰력이란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능력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보다 그들 자신의 야심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시는 때에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막 10:32-45). 하지만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옥합을 깨뜨려 비우듯이 자신을 비웠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고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하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의 깊은 고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랑과 헌신을 보셨습니다. 그녀의 눈물 속에 담긴 깊은 사랑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을 변호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만날 때 참된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순절에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랑과 우리를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