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 알파보다 오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시작은 모든 이가 비슷하게 출발하지만, 끝맺음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가리키는 단어 자체가 30개 이상이다(자연사, 객사, 정사, 익사, 소사, 압사, 전사, 중독사, 역사 등). 인간은 모두 죽기 때문에 예식장보다 장례식장이 더 많아야 하고 더 중요하다. "놀음판 돈은 새벽 문턱 나갈 때 봐야 안다. 초저녁에 따는 것으로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품위 있게 생을 정리하는 법을 알아두고, 임종준비를 잘 해야 될 일이다. 환자나 가족들이 자유의지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품위 있는 죽음'이라고 보는 이가 있다. 그러나 죽기 전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한 상태로 여생을 보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역시 품위 있는 죽음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좋은 죽음이란 환자의 가족이나 보호자가 피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소망을 존중받으며 임상적, 문화적,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죽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김시영 회장(경희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품위 있는 죽음이란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한 시점에서 치료에 매달리며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시간을 가져 주변을 정리하고 가족, 친구와 못 다한 이야기를 끝낸 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 전 약 6개월은 삶 정리에 써야 할 시간이다. 사고를 당하거나 뇌졸중, 심근경색 등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약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앓고 있던 병의 악화 속도로 측정해 자신의 기대 여명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진행성 암 같은 경우는 사망 시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경우엔 치료에만 집착하기보다 여생을 얼마나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마지막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최소 6개월 정도는 통증을 관리하면서 그 밖에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삶과 안녕을 고하는 데 써야 한다.
미국 MD 앤더슨 병원의 연구결과를 보면 조기에 완화의료를 시작한 환자가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계속한 환자보다 2개월 정도 생존기간이 더 길었다고 한다. 완화의료란 호르몬 치료나 표적 항암치료 등 적극적인 치료의 강도를 줄이고 호흡곤란, 통증, 무기력증, 불면, 섬망, 변비 등의 증상 치료에 초점을 두어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도록 돕는 의료행위이다.
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어디일까? 바로 살고 있던 집(가정)이다. 가장 편안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는 것이 환자들이 가장 바라는 바라고 한다. 하지만 통증이 있다면 호스피스 전문기관에 입원하거나 가정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임종 전 환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통증인데 이를 집에서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에서는 ①통증, 호흡곤란, 구토, 복수, 불면 등의 신체 증상을 완화하고 ②환자와 가족들의 불안이나 우울 등의 감정을 줄이고 ③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시키기 위해 영적인 돌봄을 주고 ④임종 과정을 환자와 가족이 의미 있게 보내도록 도와준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치료를 받으려면 2인 이상의 의사에게 환자가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를 해도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인을 받아야 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법을 배워보자. 환자의 죽음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환자가 좀 더 안정된 심리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울 수 있다. 환자와의 대화는 ①항상 사실을 말해준다. ②환자가 알고자 하는 것은 알려주고 모르고자 하는 것은 알리지 않는다. 그래야 생전에 갈등을 풀고 싶었던 인간관계를 정리정돈하고,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며 그것은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환자 자신이 병의 진행 상태를 알고 싶지 않다고 할 때는 알리지 않아야 한다. 단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의료진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보살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환자가 외롭지 않게 자주 대화를 나누며 지켜보는 게 좋다.
임종 환자에게 가족들이 해야 할 말은 ①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②나를 용서해주세요 ③감사합니다 ④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⑤안녕(안녕히 가십시오, 천국으로 가십시오) 등이다.
호스피스는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상이다.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다. 호스피스는 치료를 통해 병을 호전시키기보다 증상을 안정시키고 편안히 돌아가게 돕는 것이며, 동시에 가족들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 '환자'가 아니라 '소중한 인간'으로서 떠나게 도와줘야 한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