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자기의 대답이 틀리면 부끄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입을 굳게 다물고 서로 눈치만 본다.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요나 선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년)가 치리하던 시절에 살았다.
어느 날 그는 북쪽으로 550여 마일 떨어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았다. 요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왜요?”하고 물으면서 딴죽을 건 요나와 하나님의 씨름 이야기이다.
요나는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못마땅해서 슬그머니 다시스(스페인)로 도망을 갔다.
그러나 얼마 후 선원들은 성난 바다에 그를 집어 던졌고, 그를 꿀꺽 삼킨 고기는 사흘 후 니느웨의 해변에 산채로 토해냈다. 할 수 없이 니느웨에 들어간 요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정말로 무너지기를 바랐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기를 바랐다. 아무도 회개하지 않고 차라리 자기를 박대하며 쫓아내기를 바랐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수시로 침략하고 약탈해가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 아래에서 흔적도 없이 망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금식을 선포하며,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굵은 베옷을 입고 흙 먼지 위에 앉아 회개했다. 짐승들까지 굶겨가며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예정된 재앙을 전격적으로 취소하셨다. 이것은 결코 요나가 원했던 상황이 아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대답하셨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가만히 입 다물고 앉아 있기보다는 요나처럼 하나님 앞에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하다. 그렇게 생각을 노출하면 적어도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가 있다. 절대로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왜요?”를 물으면서 성장한다. 말씀양육을 통해 마음껏 하나님께 “왜요?”를 물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노출시키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