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칼럼은 제목과 달리, 지난 주에 다뤘던 “Always Fresh, 만남의 축복”이라는 주제와 상반된 주제입니다. 오해 없이 칼럼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대 때, 제게는 친구가 굉장히 많은 편이었습니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다 보니, 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 그 친구들 각자 친분이 있는 지인들까지 다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저와 가깝게 지내는 가장 친한 친구 또한 성격이 외향적이고 사교성이 넘쳐, 저는 그 친구의 다른 친구들과 친해졌고, 그 친구도 저의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는 바람에 친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지난 아버님 장례 때, 대학동창, 고교동창, 어릴 적 동네 친구들, 교회친구들까지 다 한 자리에 모였는데, 저를 통해, 모두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저의 타고난 기질 외에 저의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고등학교를 그만 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모범생이었던 제 모습은 사라지고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과 밤에 어울려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친분을 나누었습니다. 당시 친하게 지내며, 형님이라고 부르던 분들 중에는 제 나이의 두배가 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때는 그런 관계와 친분들이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서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의리 있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기에 마치 친구가 재산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들 중에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 한 걸음에 달려와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당시 외롭고 방황할 때, 같이 있어 준 친구들은 하나님의 선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수많은 친구들 중에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하는 친구는 2명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그 두 친구조차 이제는 어색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간혹, 한국을 방문할 때, 친구들을 만나면, 정겨우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현재의 삶과 환경이 저의 그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거리차이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양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분명 만날 때마다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가 오갔으나, 추억을 회상하는 일과 일상적인 흔한 대화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서슴없이 친구들에게 충고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중년이 넘은 친구들을 존중하느라, 감히 “기도해라”, “주님 뜨겁게 만나야 한다”,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저는 친구가 많이 있어 본 사람으로써, 지금도 저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있는 사람으로써, 친구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친구는 필요하나, 없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나눌 수 있는 친구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처럼, 신앙의 코드가 맞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영적 친구로 삼으라. 그러나, 지나친 기대와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관계는 철저히 사랑과 헌신에 기반을 두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믿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예수님이다. 주님을 친구 삼아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께 위로 받고, 주님으로 기뻐하라. 주님을 가까이하면, 주님이 가장 좋은 친구,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주실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친구라 일컬음을 받은 두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했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가까이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자주 만났고, 하나님 음성을 자주 들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자주 경험하였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친구는 주님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