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충청도에 있는 한 시골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멀리서만 돕던 목사님과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 교회는 42년 된 교회인데 재적과 출석이 41명이었다. 목사님은 그 당시 46세이셨고 담임하신지 11년이 되어가셨다.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작은 시골 교회였으나 무언가 꽉찬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회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본당 뒤편에는 성미를 모으는 독이 있었으며, 앞에는 적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는 성가대 자리가 있었고, 앞면에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성도들은 모두 70세 이상으로 보였다. 41명의 전체 교인들이 외부 강사가 왔다고 기뻐하며 주중인데도 100% 모였다. 나에게 설교를 할 기회를 주셔서 잔뜩 준비를 하고 갔지만 그분들을 만나는 순간 내가 준비한 설교를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대신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전부 나누었다.
예배를 마치고 그분들과 함께 악수를 나누고, 얼싸 안으며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 교회는 모든 것이 준비된 교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 기울어질지 모르는 작은 건물이었지만 예배당도 있고, 사랑으로 하나 된 성도들도 있으며, 다 찌그러진 봉고차도 있고, 성실한 목사님과 사모님도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그들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이틀간 머무는 동안, ‘얼마 안 되는 돈을 보내고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보러 왔다는 내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했는지 모른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저편 언덕에 십자가가 높은 교회는 젊은이들도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더 잘 모이기 위하여 큰 버스로 시골 구석구석에 있는 분들을 픽업하면서 교회 출석을 돕는 사역도 하는 교회라고 했다. 그러한 교회에 비하면 내가 방문한 이 교회는 너무나도 약하고 아무것도 없는 교회였다. 하지만 이 시골 교회는 세상에 어느 교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으며, 돌봄이 있고, 멀리 선교는 하지 못하지만 교회 옆 밭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호미질을 하는 이웃들을 사랑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교회였다.
나는 그분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결과가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80세가 주류를 이루는 교회라고 하여도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교회라면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역사하실 젊은 교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모든 것이 잘 구비된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교회이다. 하나님은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으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장 4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교회가 꽉 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모이고, 예배하고,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의 교회를 돌아보면 꽉 찬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치는 수많은 행복의 이유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행복하고,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하기에 행복하며,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니 행복한 그 교회가 우리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