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연약함은 거의 모든 부분 두려움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다는 의미는 그 연약함이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왜곡되게 노출되는지를 안다는 것이며, 연약함을 지켜내려는 본능적이고 왜곡된 방어들이 어떻게 악하게 이용되는 지에 대해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뚜렷한 대상도 없이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항해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되는 막연한 불안에서부터,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생기는 더 구체적인 두려움까지 그 범위가 아주 다양하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돈 없이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오해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 행복을 느끼면서도 그 행복에는 끝이 있다는 두려움, 책임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가진 것에 비해 사람들에 의해 과대 평가되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미움과 복수, 질투의 감정에 대한 두려움, 죄를 지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기 까지….그러다 보니 때론 ‘두려움을 두려워하는’지경까지 다다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두려움은 두려워하던 바로 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부모를 닮을까 봐 두려워서 오히려 부모를 점점 더 닮아가고,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이보다 더 빨리 늙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만 이러한 두려움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때론 가장 자신감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다만 누구나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에 대한 그들의 반응 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두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좀더 선명하게 말하자면, 두려움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반응과 건강한 반응들이 있다는 것이며, 건강하지 못한 반응에는 겉으로 드러나기에 강하게 보이는 반응과 약한 반응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한 반응이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자신 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띠며, 자신의 두려움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자신의 나쁜 면을 감추기 위해 좋은 면을 과시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약한 반응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감추고 싶어하는 바로 그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약점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것을, 강한 자는 은폐하는 것으로 반응하는 반면 약한 자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약한 자는 항상 강한 자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한 자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기 약점을 숨기기 때문에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고 결국 스스로도 그 약점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 유익이라 일깨우고 계시는 성경의 말씀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제시되는 부분들이다.
반대로, 약한 자는 자신의 약점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약한 자가 늘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삶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가 약점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강한 자의 강함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짓눌린다. 강한 자의 강한 반응이 죄가 되는 이유는 강한 자가 그들의 승리감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려고 약한 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잡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강한 반응과 약한 반응은 외양적으로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실 강한 반응이 약한 반응으로, 혹은 약한 반응이 강한 반응으로 쉽게 전환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밀접함은 쉽게 발견된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잔소리와 냉소를 참아내던 남편이 갑자기 화가 나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그런 남편의 반응에 그 동안 남편을 휘두르던 아내의 격렬한 감정이 사라지고 완전히 우울증에 빠지는 급격한 상태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쉬운 예다. 결국 두 반응 모두 작용하는 기제는 다르지만 초래하는 결과는 같다.
우리 모두는 숱한 노력과 결심에도 불구하고 때론 승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려 할수록 우리의 자신감은 약해지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보이는 반응들은 더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결점을 고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는 위험 요인이 있다는 것과 우리 자신이 가진 이상을 너무도 쉽게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다. 우리의 본능을 억누름으로써 그것을 피하기보다 의식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즉 우리 안에 있는 위험한 죄성과 맞서는 끊임없는 분투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얻는 다는 것은 두려움과 항상 관계되어 있는 죄의식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이지, 죄와 무관하게 된다는 자기 최면식의 자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숱하게 일깨워 주고 계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죄이니 두려움이 들 때마다 “주님. 제가 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두렵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서둘러 고백하라고 재촉하시는 메시지인가? 아니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주님의 끝없는 자비와 긍휼을 의지해 두려움을 고백하고 직면하며, 두려움의 강을 통과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회복을 향해 나아오라는 말씀이신가?
지혜롭고 용기있는 선택을 통해 두려움을 넘어 자유함과 회복의 길로 들어서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