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유태인과 백인 환자를 주로 진료하다가 LA한인타운으로 이사하여 새로 개원한 지 몇 개월 지났을 때의 일이다.
과거 백인 환자들을 진료할 때는 “지금 환자의 질병이 이러이러하니 이러이러한 약 처방을 합니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진료실을 나갔다.
그런데 LA한인타운으로 옮겨 개원한 후 맞이하게 된 많은 한국인 환자들은 이 같은 설명을 하면 “약을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데요”, “약 먹으면 속이 쓰려서”, “지금 별 증상이 없는데 안 먹으면 안돼요?”등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이런 환자들을 대할 때면, 필자는 다시 왜 약을 꼭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환자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결국 환자 자신들의 생각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LA한인타운으로 옮겨 새롭게 개원한 것이 옳은 결정인가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힘겨운 한 주간을 보내고 주일을 맞아 같은 고민을 하면서 교회에 갔을 때, 그날 주일예배 설교 본문이 여호수아 18장이었다.
유다와 요셉 지파외에, 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들에게, 그 땅을 점령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땅의 그림을 그려오게 한 후 제비뽑기를 통해 땅을 분배하셨다는 말씀이셨다.
설교 말씀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 땅을 주셨다 할지라도 그들이 직접 가서 그 땅을 정복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땅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에서는 이 점을 인정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의외로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고등학생이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하버드대학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거나 무책임하다고 말할 것이다.
필자는 질병이 발병하면 의사의 말은 무시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심지어 뇌출혈이 있는데 수술은 마다하고 오로지 기도로 낫겠다고 하는 환자도 봤다. 그 옛날 그 일곱지파가 끝까지 그 땅으로 가지 않고 기도만 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성경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건강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이 지키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무리 훌륭한 육체를 주셨다 할지라도, 환자 자신이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그 은혜은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의 그림을 그려서 환자들에게 알려 주라는 명령을 받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그림 상의 방법을 통해 건강을 지켜내는 것은 환자의 책임이며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