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점프 스턴트맨이 생명을 잃은 이유가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낙하산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그의 경력과 노련함은 그를 살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수 천 번을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어도 그가 살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낙하산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는 자신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이 모두 ‘우리가 ~을 하지 않았습니까?’하고 어떤 현상과 행위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집은 대대로 목사, 선교사 가문입니다.’
‘이런 기적이 나타나니 우리에게 분명히 구원이 있는 것 아닙니까?’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야 가장 위험한 생각이 있는데, 영접한 행위 자체를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 분명히 영접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제가 눈물 흘려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고백하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고백을 수 백 번, 수 천 번 했어도 예수님이 심령에 없다면 낙하산 없는 노련한 스턴트맨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삶은 예수님의 향기와 성품이 열매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내적 확신의 증거와 열매로 나타나는 외적 증거가 합쳐져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영혼이 죽었던 우리가 살아날 수 있던 이유도,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용납하심을 받은 이유도, 평생을 악하게 산 강도가 낙원을 약속받은 이유도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만 구원의 근거가 되시기에 주님만 우리의 모든 찬송과 자랑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