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5세기와 4세기 즉 클래식 시대의 문헌에는 “아가파오”란 말이 드물게 사용되었고, 그 뜻은 “사랑하다”가 아니라 “소중히 여기다”(cherish, treasure)로 쓰였다. 그러니까 이 동사가 “사랑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주전 3세기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 성경의 역자들이 “아가파오”가 “사랑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이들이 희랍어의 흐름과 변화에 퍽 민감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70인역 성경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당시의 알렉산드리아에 헬레니즘(Hellenism)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히 희랍고전작품들의 수집과 편찬 그리고 주석에 있어서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 곳에 있던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다. 필라델푸스 때에 벌써 장서가 5십만 권에 이르렀고, 주후 47년에 이 도서관이 불타게 되었을 때 장서는 약 7십만 권에 달하였다고 한다.
70인역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한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BC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것이라는데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에는 70인역 하면 으레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성경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는 모세5경만을 의미했다. 70인역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BC2세기에 쓰였다고 추측되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에 근거한 것이다.
이 편지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프톨레미 2세인 필라델푸스(Ptolemy II Philadelphus: 283-246)에게 모세5경을 번역하여 도서관에 보관하자는 건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필라델푸스는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예루살렘에 있는 당시의 대제사장 엘레아자르(Eleazar)에게 편지를 보내 모세5경을 번역할 사람들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하자, 엘레아자르는 12지파에서 6명씩 선출하여 이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었고, 이 72명의 번역위원들에 의해서 모세5경의 번역작업은 72일 동안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요즈음 학자들 가운데서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는 없다. 다시 말해 이 문서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픽션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픽션이라고 해서 그것이 전하는 모든 것들이 완전한 허구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사실로 간주해도 좋을만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마도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희랍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을 위해 처음에는 모세5경만이 번역되었을 것이고 그 후 점차적으로 구약전체가 번역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구약전체를 번역하는 작업은 상당히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 작업이 약 3세기 동안 계속되었으리라 보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부터 70인역이 비단 알렉산드리아뿐만 아니라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가운데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신약의 저자들이 대부분 70인역 성경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가페”를 신적인 사랑으로 사용한 70인역의 전통을 이들이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약이 구약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것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사실에 대한 하나의 예증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5. 아가파오와 필레오는 둘 다 동일한 히브리어 동사 ‘아하브’의 번역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이 희랍어가 아닌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이었다면, 세 번의 질문에서 사용하신 단어는 모두 “아하브”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예루살렘에서 출판된 히브리어 판 신약성경에도 “아하브”란 단어가 세 질문에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요한복음서의 저자 또는 요한복음 21장의 저자가 본문에 기록된 대화를 희랍어로 번역할 때 처음 두 질문에는 “아가파오”를 사용하고 마지막 질문에는 “필레오”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처럼 두개의 상이한 단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은 “사랑하다”라는 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매번 질문을 하신 후에 베드로가 대답을 하면 “내 양을 먹이라” 또는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질문과 세 번째 질문 다음에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두 번째 질문 다음에는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 양을 먹이라”에는 “보스코”(β?σκω)라는 동사가, 그리고 “내 양을 치라”에는 “포이마이노”(ποιμα?νω)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하나는 “신과 같은 목자로서 또는 신적인 사랑으로 내 양을 먹이라”라는 뜻으로,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목자로서 또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내 양을 치라”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두 단어의 모양은 달라도 뜻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둘 다 “양을 치다” 또는 “양을 먹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라아”( h[;r;) 동사 하나뿐이다. 따라서 위에서 상정한 대로 이 경우에도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를 사용하셨다면 세 번 다 “라아” 동사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처럼 두 개의 상이한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한 이런 예는 이 두 경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양”이란 말도 처음의 경우에는 “아르니아”(?ρν?α)가 사용되었지만 다음의 두 경우에는 “프로바타”(πρ?βατα)가 사용되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촌”(@aOx)과 “에데르”(rd,[e)이다. 그 외에 일반적으로 가축을 뜻하는 말로 “바카르”(rq;B;)와 “미크네”(hn 그 외에 양을 뜻하는 말로 “탈레”(hl,f;)와 “케베스”(cb,K,), “세”(hc,)가 있는데, “탈레”는 일반적으로 “양”을, “케베스”는 보통 “어린 양”을 그리고 “세”는 보통 “양” 또는 “어린 양”을 뜻한다. 그리고 “탈레”는 삼상 7:9와 사 65:25 두 군데 나오고, “케베스”와 “세”는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이것들은 집합명사가 아니라 개체명사들이기 때문에 ”양무리“라는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양무리라고 번역될 수 있는 “탈레”(hl,f)의 복수형인 “틀라임”(!yail;f])은 사 40:11에 단 한 번 나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