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서승원 목사
(Photo : ) 서승원 목사

우리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흔히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중에 “아가페”(ajgavph)는 “신적인 사랑” (divine love) 즉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을 뜻하는 반면에 “필리아”(φιλ?α)는 “인간적인 사랑”(human love) 또는 “조건적인 사랑”(conditional love)을 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토르게”(στοrghv)와 “에로스”(?ρω?)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들에 의하면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필리아”는 “친구간의 사랑”, “스토르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요,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 또는 “육체적인 사랑”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은 성경적인가?

 이 네 가지의 사랑 중에서 “스토르게”와 “에로스”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스토르게”의 경우는 φιλ?α와 στοrghv를 합성하여 만든 형용사 filovstorgo”의 복수형이 롬12:10에 나온다. 그 뜻은 Liddel-Scott의 Greek and English Lexicon에 의하면 “loving tenderly” 또는 “affectionate”인데, 이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또는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부가적인 설명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ρω?의 경우는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스토르게”와 “에로스”의 구별은 성경에 근거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가페”와 “필리아”에 대한 구별은 어떠한가? 이 두 단어는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런데 성경 속에서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을 지칭하는 말로, 그리고 “필리아”는 “인간적인 사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가페”와 “필리아”를 구별하는 이들이 으레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21:15-17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와 나눈 짤막한 대화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다. 처음 두 질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아가파오”(?γαπ?ω)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물으시는데, 베드로는 “필레오”(φιλ?ω)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대답한다. 그러자 마지막 질문에서는 예수님도 “필레오” 동사를 사용하여 물으신다. 목사님들은 보통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베드로가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대답한 것은 자기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사실 때문에 감히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의 입장을 참작하여 세 번째 질문에는 “필레오” 동사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은 이러한 설명 끝에 “그러므로 예수님은 얼마나 멋있는 분입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희랍어 원문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목사님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학자들 중에도 이렇게 또는 이와 유사한 해석을 내리는 분들이 있고, 심지어 서양고전(Classics) 즉 고대 희랍과 로마의 문화에 정통한 신학자들 가운데도 이 두 동사에 상이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해석 또는 이와 유사한 해석들은 성경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두 동사들이 성경의 다른 구절들 속에서 실제로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다른 곳 적어도 요한복음 내에서는 “아가파오”는 신적인 사랑, 그리고 “필레오”는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2. 성경적 근거 없음

요한복음에서 21:15-17 외에도 “아가파오” 동사는 20번, “필레오” 동사는 16번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가파오” 동사의 명사형인 “아가페”는 10번 사용된 반면에 “필레오” 동사의 명사형인 “필리아”는 나타나지 않는다. 지면 관계상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일일이 살펴볼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먼저 “아가파오”의 경우를 보면 3:16에서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13:1에서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15:13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에서는 명사형인 “아가페”가 사용되고 있다. 이 세 경우만 놓고 보면 동사 “아가파오”나 명사 “아가페”가 신적인 사랑을 뜻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가파오”가 3:19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어두움을 빛보다 더 사랑하며”, 12:43에서는 믿는 자들 중 더러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들의 영광을 더 사랑한다”라는 표현에 사용되고 있다. 이 두 경우 즉 3:19와 12:43에서는 “아가파오”가 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인간들의 저급한 욕망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필레오” 동사의 경우 5:20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사랑하신다”라는 말로, 11:3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신다.”라는 표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12:25에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에, 그리고 15:19에서는 “세상은 자기에 속한 자들을 사랑한다”라는 표현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필레오”가 신적인 사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인간적인 사랑 또는 세상적인 사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로써 “아가페”가 신적인 사랑을 그리고 “필레오”가 인간적인 사랑을 뜻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아가파오”와 “필레오”가 쓰인 구절들을 일일이 찾아서 비교해보지 않더라도 21:15-17을 잘 읽어보면 그러한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인데,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예, 주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이다. 여기서 만일 “아가파오”가 신적인 사랑을 뜻한다면, 예수님의 질문은 “여기 이 사람들은 신적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는데, 너는 이 사람들보다 더욱 신적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뜻이 될 것이며, 베드로의 대답은 “예, 주님, 내가 당신을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가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베드로는 대답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니요, 주님, 나는 주님을 신적인 사랑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다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이 자기를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셨을 것인가? 그리고 “아가파오”가 신적인 사랑 즉 조건 없는 절대적 사랑을 뜻한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것인가? 만일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면 이들 모두가 신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거나 또는 적어도 다른 제자들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사랑에 정도의 차이나 구별이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