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되려면? (롬1:1-6)
무한 경쟁 시대에서 우리가 겪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가? 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생활에서 성공자가 되지 못한다면 다른 분야에 아무리 성공을 해도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커플들이 바라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이듯 마찬가지로 모든 신앙인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되는 것일 겁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공적인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17절은 바로 자신의 자서전적인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장 1절에 보면 I. 첫 번째 성공적인 크리스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6천만 명 이상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로마가 지배하는 인구의 반 이상이 노예였다는 소리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둘로스(dulo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을 의미합니다. 둘로스는 시간 목숨, 자신이 가진 모두 것을 주인이 콘트롤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한밤중에든지 새벽이든지 주인이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위험한 지역에 보내도 가야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주인이 달라고 하면 줘야합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권리나 자기주장도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둘로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아니 종노릇 하는 것이 뭐 그리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이왕에 자신을 소개하려면 더 그럴듯하고 근사하게 치장을 해서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 했을까요?
당시 종이 되는 세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에 패해서 포로로 잡혀오면 종이 됩니다. 또 하나는 너무 가난하거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빚이 많아지면 빚값 대신 종으로 팔립니다. 아니면 너무 가난해서 자신을 스스로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종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종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본질상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더라도 우리는 저주 받을 운명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당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속량(贖良)이라는 말은 바로 종의 값을 치루고 자유케 한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자유케 된 것입니다. 죄의 종살이에서 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종 타령이냐고 이렇게 생각 될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구약의 히브리 사람들의 종에 관한 규례를 살펴보면 히브리 사람 중에 종이 되어서 7년이 되면 종들은 각자 자유를 찾게 되며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출 21:5-6에 보면 그 종이 주인과 자기 처자를 사랑하므로 혼자 나가서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주인은 그를 재판관 앞에 데리고 가서 그를 문이나 문설주에 기대서게 하고 송곳으로 그 귀를 뚫어야 한다. 그러면 그가 평생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종은 영어로는 Bond slave. 자원해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종을 말합니다. 주인을 섬기되 억지로,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기쁘고 자원해서 섬기는 그런 자세를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종은 바로 여기서 말하는 - Bond-Slave입니다. 주인을 사랑해서 주인에게 스스로 자원해서 종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은 종이되 너무 행복한 종인 것입니다. 물론 신분적으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과는 자녀 관계지만 사역에 있어서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뜻, 내 재산,내 시간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주님께 헌신할 때에 우리는 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모든 상대는 주님과 상대하는 것이 됩니다.
II. 두 번째 성공적인 크리스천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부름을 통해 사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1:1) 예수그리스도의 대언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입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가 있었다면 신약 시대에는 사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도의 정신은 살아 있지만 사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란 직분은 -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증 받은 사람에 국한 됩니다. 좁게는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주 특수한 경우로 그는 예수님의 12사도는 아니었지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특별히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불러 세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메세지를 이방에 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을 주님께 받아서 교회를 세우고 굳건히 만드는 역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신 것 같이 오늘날 우리도 부르셔서 주님의 사역지로 보내고 계십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일터가 하나님이 보내신 장소는 아닌지요? 여러분이 경영하는 사업체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은 아닌지요? 우리가 속해있는 훼드럴웨이 커뮤니티가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사역 장소는 아닌지요? 여러분이 속해 있는 학부형회, 골프 클럽, 혹은 한인회, 노인회이 모든 영역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장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들입니다.
대사는 보낸 자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물론 재임 중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대통령일 때 보다 퇴임 후에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은퇴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Habitat 운동, 즉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자기가 가야할 장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요? 목적이 없거나 아니면 목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지가 자살 하는 거 봤습니까? 거지는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레기 통 이라도 뒤져서 먹습니다. 욕을 먹고 천시를 당해도 밥 한 그릇 줄 때까지 매달립니다. 정말 그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요. 자살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은 한데 삶의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습니다. 무의미, 허무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만나는 것이고 그분이 계시 곳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받은바 사명이 확실해야 합니다. 사명이 불확실 합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보세요. 일손이 필요한 곳이 보이지 않습니까? 보신 분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III. 세 번째 성공하는 크리스천은 바로 복음을 위해서 성별된 사람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성별은 분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속주의와의 분리입니다. 세속주의란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의 풍속을 의미 합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의미 합니다. 그 사람들이 행동하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기주의, 권위주의, 물질주의, 과학 만능 주의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에서 분리하여 복음전파를 위해서 자신을 도구로 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서 2-4절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이 복음은 유앙겔리온 이란 말은 쓰는데 유-Good- 앙겔리온- 앙겔로스 가 전해주는 메세지- 앙겔로스(천사-멧신저) Good News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옥에 있는데 가장 좋은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맛있는 사식? 면회? 자유시간? 아닙니다. 바로 사면 통고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기간 동안 제일 고대했던 소식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과 같이 모든 유대인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바로 이 소식이 유앙겔리온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유앙겔리온은 이보다 더 기쁜 것입니다. 이 복음은 바로 구세주가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구세주는 1.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확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벌써 아들에 관하여 계시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셨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선포했고, 여러 모양으로 점진적으로 선택적으로 이 계시를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모호하고 희미하게 시작해서 점점 구체적이며 세밀하게 마지막 날에는 아들로서 완전히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인간이신 분이며 성결의 영으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능력으로 보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지 어디 하나님이라 했느냐고 교묘히 물고 늘어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를 낳으면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네 사람의 아들은 바로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바로 참 사람이시면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을 읽으실 때에 그런 점을 발견 하십니까?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읽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성경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제사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병거위에서 이사야서를 읽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아서 고민합니다..(8:32-34) 사53:7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게 선지자 자신을 의미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건가?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서 전도자 빌립을 보내어 말씀을 강론케 합니다. 드디어 그는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가 당시에 원문으로 성경을 읽었을 텐데 우리 보다 얼마나 쉬웠을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없게 하나님이 감춰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깨닫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길이 복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엄청난 축복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원한 생명이 어떤 것이라 생각 하십니까?
미국에서 어떤 노인이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100만불짜리 복권이 당첨된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렇지 않아도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 이 소식을 알리면 너무 기뻐서 아마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서 그래서 가족회의를 한 결과 그럼 목사님께 찾아가서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고 목사님이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지혜롭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목사님께 복권 당첨된 이야기와 지혜롭게 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목사님도 흔쾌히 승낙을 하고 목사님이 병실에 찾아가서 노인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상황을 보다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에 분명히 만일입니다. 만일에 100만불 복권이 당첨되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하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인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어차피 오래 못삽니다. 혹시 100만 불이 당첨되면 그것 목사님 다 가지세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이 영생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 생애 가운데 최고로 행복하고 기쁜 때는 기억해보십시오. 자 그런 순간이 일주일에 한번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신납니까?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이 아니라 매 순간 마다 일어나는 삶,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Quality-본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현재의 육신으로는 감당 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부활 때에 주시는 것으로 저는 생각 합니다.
이 말로 다할 수없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바로 복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이 훼손 되지 않게 우리 자신을 성별해야 합니다.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공자가 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복음의 진보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내가 직장에서 복음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욱 성실히 일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일 겁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정당하고 깨끗하게 돈도 벌고 그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여서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바울과 같이 여러분이 성공한 크리스천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께 부르심을 통해 받은 사명을 가진 크리스천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의 수호자요 전파자로서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우리가 겪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가? 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생활에서 성공자가 되지 못한다면 다른 분야에 아무리 성공을 해도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커플들이 바라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이듯 마찬가지로 모든 신앙인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되는 것일 겁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공적인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17절은 바로 자신의 자서전적인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장 1절에 보면 I. 첫 번째 성공적인 크리스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6천만 명 이상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로마가 지배하는 인구의 반 이상이 노예였다는 소리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둘로스(dulo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을 의미합니다. 둘로스는 시간 목숨, 자신이 가진 모두 것을 주인이 콘트롤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한밤중에든지 새벽이든지 주인이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위험한 지역에 보내도 가야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주인이 달라고 하면 줘야합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권리나 자기주장도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둘로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아니 종노릇 하는 것이 뭐 그리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이왕에 자신을 소개하려면 더 그럴듯하고 근사하게 치장을 해서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 했을까요?
당시 종이 되는 세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에 패해서 포로로 잡혀오면 종이 됩니다. 또 하나는 너무 가난하거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빚이 많아지면 빚값 대신 종으로 팔립니다. 아니면 너무 가난해서 자신을 스스로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종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종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본질상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더라도 우리는 저주 받을 운명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당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속량(贖良)이라는 말은 바로 종의 값을 치루고 자유케 한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자유케 된 것입니다. 죄의 종살이에서 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종 타령이냐고 이렇게 생각 될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구약의 히브리 사람들의 종에 관한 규례를 살펴보면 히브리 사람 중에 종이 되어서 7년이 되면 종들은 각자 자유를 찾게 되며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출 21:5-6에 보면 그 종이 주인과 자기 처자를 사랑하므로 혼자 나가서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주인은 그를 재판관 앞에 데리고 가서 그를 문이나 문설주에 기대서게 하고 송곳으로 그 귀를 뚫어야 한다. 그러면 그가 평생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종은 영어로는 Bond slave. 자원해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종을 말합니다. 주인을 섬기되 억지로,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기쁘고 자원해서 섬기는 그런 자세를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종은 바로 여기서 말하는 - Bond-Slave입니다. 주인을 사랑해서 주인에게 스스로 자원해서 종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은 종이되 너무 행복한 종인 것입니다. 물론 신분적으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과는 자녀 관계지만 사역에 있어서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뜻, 내 재산,내 시간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주님께 헌신할 때에 우리는 성공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모든 상대는 주님과 상대하는 것이 됩니다.
II. 두 번째 성공적인 크리스천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부름을 통해 사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1:1) 예수그리스도의 대언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입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가 있었다면 신약 시대에는 사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도의 정신은 살아 있지만 사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란 직분은 -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증 받은 사람에 국한 됩니다. 좁게는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주 특수한 경우로 그는 예수님의 12사도는 아니었지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특별히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불러 세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메세지를 이방에 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을 주님께 받아서 교회를 세우고 굳건히 만드는 역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신 것 같이 오늘날 우리도 부르셔서 주님의 사역지로 보내고 계십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일터가 하나님이 보내신 장소는 아닌지요? 여러분이 경영하는 사업체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은 아닌지요? 우리가 속해있는 훼드럴웨이 커뮤니티가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사역 장소는 아닌지요? 여러분이 속해 있는 학부형회, 골프 클럽, 혹은 한인회, 노인회이 모든 영역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장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들입니다.
대사는 보낸 자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물론 재임 중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대통령일 때 보다 퇴임 후에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은퇴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Habitat 운동, 즉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자기가 가야할 장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요? 목적이 없거나 아니면 목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지가 자살 하는 거 봤습니까? 거지는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레기 통 이라도 뒤져서 먹습니다. 욕을 먹고 천시를 당해도 밥 한 그릇 줄 때까지 매달립니다. 정말 그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요. 자살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은 한데 삶의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습니다. 무의미, 허무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만나는 것이고 그분이 계시 곳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받은바 사명이 확실해야 합니다. 사명이 불확실 합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보세요. 일손이 필요한 곳이 보이지 않습니까? 보신 분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III. 세 번째 성공하는 크리스천은 바로 복음을 위해서 성별된 사람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성별은 분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속주의와의 분리입니다. 세속주의란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의 풍속을 의미 합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의미 합니다. 그 사람들이 행동하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기주의, 권위주의, 물질주의, 과학 만능 주의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에서 분리하여 복음전파를 위해서 자신을 도구로 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해서 2-4절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이 복음은 유앙겔리온 이란 말은 쓰는데 유-Good- 앙겔리온- 앙겔로스 가 전해주는 메세지- 앙겔로스(천사-멧신저) Good News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옥에 있는데 가장 좋은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맛있는 사식? 면회? 자유시간? 아닙니다. 바로 사면 통고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기간 동안 제일 고대했던 소식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과 같이 모든 유대인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바로 이 소식이 유앙겔리온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유앙겔리온은 이보다 더 기쁜 것입니다. 이 복음은 바로 구세주가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구세주는 1.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확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벌써 아들에 관하여 계시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셨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선포했고, 여러 모양으로 점진적으로 선택적으로 이 계시를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모호하고 희미하게 시작해서 점점 구체적이며 세밀하게 마지막 날에는 아들로서 완전히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인간이신 분이며 성결의 영으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능력으로 보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지 어디 하나님이라 했느냐고 교묘히 물고 늘어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를 낳으면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네 사람의 아들은 바로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바로 참 사람이시면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을 읽으실 때에 그런 점을 발견 하십니까?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읽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성경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제사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병거위에서 이사야서를 읽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아서 고민합니다..(8:32-34) 사53:7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게 선지자 자신을 의미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건가?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서 전도자 빌립을 보내어 말씀을 강론케 합니다. 드디어 그는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가 당시에 원문으로 성경을 읽었을 텐데 우리 보다 얼마나 쉬웠을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없게 하나님이 감춰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깨닫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길이 복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엄청난 축복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원한 생명이 어떤 것이라 생각 하십니까?
미국에서 어떤 노인이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100만불짜리 복권이 당첨된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렇지 않아도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 이 소식을 알리면 너무 기뻐서 아마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서 그래서 가족회의를 한 결과 그럼 목사님께 찾아가서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고 목사님이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지혜롭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목사님께 복권 당첨된 이야기와 지혜롭게 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목사님도 흔쾌히 승낙을 하고 목사님이 병실에 찾아가서 노인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상황을 보다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에 분명히 만일입니다. 만일에 100만불 복권이 당첨되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하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인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어차피 오래 못삽니다. 혹시 100만 불이 당첨되면 그것 목사님 다 가지세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이 영생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 생애 가운데 최고로 행복하고 기쁜 때는 기억해보십시오. 자 그런 순간이 일주일에 한번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신납니까?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이 아니라 매 순간 마다 일어나는 삶,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Quality-본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현재의 육신으로는 감당 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부활 때에 주시는 것으로 저는 생각 합니다.
이 말로 다할 수없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바로 복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이 훼손 되지 않게 우리 자신을 성별해야 합니다.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공자가 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복음의 진보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내가 직장에서 복음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욱 성실히 일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일 겁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정당하고 깨끗하게 돈도 벌고 그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여서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바울과 같이 여러분이 성공한 크리스천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께 부르심을 통해 받은 사명을 가진 크리스천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의 수호자요 전파자로서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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