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오래전에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차마고도는 차와 말을 교환하던 험준한 교역로입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차나 말보다 소금이었습니다. 티베트 고원에서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품이었고, 곡식과 생활필수품을 얻을 수 있는 화폐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금을 등에 지고 수백 킬로미터의 위험한 절벽길을 걸었습니다. 소금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양식이었고 생명을 이어 주는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3). 우리는 소금을 통해 깊은 영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소금의 영성은 자신을 감추는 영성입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들어가면 그 모습을 감춥니다. 자신을 녹여 음식 속으로 스며듭니다. 소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소금이 들어간 음식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소금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습니다. 소금은 녹아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완성합니다. 예수님은 소금처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참된 섬김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듭니다. 사랑은 소리보다 깊고, 희생은 말보다 오래 남습니다.

둘째, 소금의 영성은 다른 사람의 맛을 살려 주는 영성입니다. 소금은 자기 맛을 자랑하기 위해 음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을 살려 주기 위해 들어갑니다. 쓴맛을 줄이고 단맛을 돋우며, 음식 전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돕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만 빛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고, 가능성을 북돋우며, 장점을 칭찬해 줍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자기 모습대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녀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꽃피우도록 도와줍니다. 소금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음식의 맛을 망칩니다. 지나친 간섭도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충고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랑은 적절한 거리를 지킬 줄 압니다. 소금의 영성은 다른 사람을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셋째, 소금의 영성은 부패를 막는 영성입니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에 소금은 고기와 음식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티베트 고원에서도 소금은 긴 겨울 동안 음식이 썩지 않도록 지켜 주는 귀한 보존제였습니다. 세상에는 부패를 촉진하는 힘이 있습니다. 거짓과 탐욕, 미움과 분열, 음란과 폭력이 사람의 영혼과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서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은 음식 밖에 머물면서 음식의 부패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음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 교회와 사회 속에서 정직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 이익만 구할 때 공동체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소금은 적은 양으로도 부패를 막습니다. 우리가 세상 전체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부패가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막을 수는 있습니다.

넷째, 소금의 영성은 생명을 보존하는 영성입니다. 소금은 인간의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돕습니다. 체내 수분의 균형을 유지하고, 신경과 근육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돕습니다. 티베트 고원에서 소금은 사람뿐 아니라 야크와 양 같은 가축의 생명을 지켜 주는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싸매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을 살리는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소금의 영성은 함께 모이는 공동체 영성입니다. 소금 한 알은 너무 작아 그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한데 모여 음식 속에 녹아들면 음식 전체의 맛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일 때 세상에 거룩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소금은 혼자 빛나지 않습니다. 소금은 함께 녹아들어 맛을 냅니다. 건강한 교회는 누가 더 크고 중요한지를 놓고 경쟁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세상을 살립니다.

오늘도 이름 없이 녹아드는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상처 입은 생명을 치유하는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이 복음의 깊고 아름다운 맛을 경험하게 되기를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