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책은 머리로 읽고, 어떤 책은 가슴으로 읽는다. 강태광 목사의 ‘하박국과 그의 하나님’은 후자였다.
책장을 펼치자 하박국이라는 오래된 선지자가 낯선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로 다가왔다. 삶이 무너질 듯 흔들리는 사람,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사람,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왜입니까?"를 묻는 사람. 그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선지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도 이 책만큼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군종목사와 목회 현장, 선교 사역에서 길어 올린 살아 있는 예화들은 딱딱한 성경 해설을 따뜻한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저자의 유머는 적당한 곳에서 긴장을 풀어 주고, 삶에 뿌리내린 비유는 독자로 하여금 "그래, 바로 내 이야기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무엇보다 저자는 성경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말씀을 삶으로 데려온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하박국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과 함께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의 독서 습관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 별표, 내 생각 등을 바로 책 위에 쓰기에 읽은 책은 지저분하다. 별표 5개인 부분은 ‘그래도 신뢰하라’였다.
우리는 아픔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보다 이유를 찾는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지 묻는다. 그런데 저자는 "섭리 된 아픔", "성숙을 위해 필요한 아픔"이라는 표현으로 고난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아픔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빚으시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처음 접한 ‘'은총 적 유기'와 '은총 적 방조'라는 표현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버려짐으로 오해하지만, 저자는 가장 위대한 '은총 적 유기'는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가장 깊은 사랑으로 내어주신 사건. 십자가는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큰 사랑이 흘러나온 자리였다.
그 순간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아픔과 설명할 수 없었던 시간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게만 느껴졌던 날들이 떠올랐다. 돌아보니 그 시간은 하나님이 떠나신 시간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끌어 오신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다. H. G. 웰스의 단편 ’대주교의 죽음‘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평생 습관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여!"를 외치던 주교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오냐, 내가 여기 있다.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응답하시자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다. 웃기면서도 내 가슴이 서늘했다. 혹시 나 역시 하나님을 만나기보다 기도하는 흉내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책은 점점 하박국의 시선을 우리에게 옮겨 놓는다. 악인이 형통하는 세상을 보며 분노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악인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쓰임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임 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을 부러워할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다.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내 삶도 떠올랐다. 그때는 견디기 어려웠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모두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인생에서 버려지는 눈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은 상처를 통해 사람을 더 깊게 만드셨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배우게 하셨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하박국을 감사의 사람으로 세운다. 환경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화과나무는 여전히 무성하지 않고, 외양간은 비어 있으며, 현실은 그대로다. 그러나 하박국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는 감사할 수 있었다. 저자는 "감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믿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또 별표 5개를 그렸다. 나 역시 남편의 회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는 '선불감사'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미래를 먼저 감사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 별표5, 밑줄 세 개, 하박국 3장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은혜를 받은 말씀이다. 하나님은 절벽을 없애 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절벽을 오를 수 있는 사슴의 발을 주시는 분이었다.
이 말씀은 내게 더욱 특별했다. 얼마 전 나는 사슴의 생태를 공부하며 한 편의 시를 썼다. 절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발로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믿음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읽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만난 듯한 기쁨이 있었다.
하박국은 끝내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불평을 품던 사람은 기도를 품는 사람이 되었고, 기다림을 품던 사람은 감사를 품는 사람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부흥을 품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덮으며 나도 조용히 "아멘." 하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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