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틈만 나면 험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그야말로 ‘주야장천(晝夜長川)’ 험담한다. 그들의 험담은 뿌리박힌 습관이다.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험담하며 비난한다. 유대인이 성경을 해석하는 참고하는 미드라시가 있다. 유대인이 애독하는 미드라시는 험담의 해악을 지적한다.
미드라시는 험담의 해악이 살인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험담하는 순간 우리는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자신, 험담을 듣는 자 그리고 험담의 대상자 셋을 한꺼번에 죽인다. 그러므로 험담하는 것도 나쁘지만 험담을 들어주는 것도 나쁜 일이다. 험담을 들어주며 고개 끄떡일 때 자기 심령도 죽어가고 있고, 험담하는 자도 죽는다는 것이다. 소름 돋는 일이다.
루스벨트 대통령 영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여사는 ‘위대한 사람들은 생각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속물들은 사람을 이야기한다.(Great minds discuss ideas; Average minds discuss events; Small minds discuss people.)’라고 했다. 읽을수록 공감이 되는 말이다. 험담은 천박한 속물들의 전유물이다.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애드거 포의 무덤>이라는 시에서 험담을 가리켜 ‘히드라의 비열한 소스라침’이라고 했다. 시 속에서 이 표현은 천재적인 시인 에드거 앨런 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 광인으로 폄훼하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당대 대중과 평론가들을 말한다. 그들의 잔인한 험담을 히드라의 비열한 소스라침이라고 일갈했다.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두(多頭)의 괴물이다. 무서운 것은 하나를 자르면 여러 개의 머리가 솟아올라 상황이 악화된다. 험담은 또 다른 험담을 낳고, 한 험담으로 셋을 죽이고 몇 배가 되어 많은 영혼을 죽이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험담(險談)은 남의 흠이나 잘못된 점을 들추어내어 뒤에서 헐뜯거나 나쁘게 말하는 행위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동참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끼며 안정감을 느낀단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말대로 저속한 사회적 털 고르기(Social Grooming)'다.
험담의 해악은 크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습관적으로 남을 험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험담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타인의 평판을 깎아내려야만 비로소 자기 존재가치를 확보하며 안도하는 ‘못난 안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험담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뱀이 하와에게 속삭인 말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험담이다. 뱀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라며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와 마음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험담했다. 이 험담으로 인류는 범죄하고 멸망했다. 오늘도 뱀이 우리를 악하게 유혹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어느 목사님 칼럼에서 말할 때 생각하라(THINK)고 조언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말하기 전에 사실(Truth)인가?를 생각하고, 도움이(Helpful) 되는가?를 생각하고, 감동적인(Inspring)가?를 생각하고, 필요한(Necessary)가?를 생각하고, 이것이 친절한(Kind)가?를 생각하라는 조언이었다. 험당하고 싶을 때 생각하라(THINK)는 조언이 생각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