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여름, 한국 김포공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내렸다. 고등학교 한 학기를 마친 만16세 사춘기 학생이었다. 이후 에드몬톤, 뱅쿠버, 로스앤절러스를 거쳐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에 정착했다. 한인 이민 1세와 2세 사이의 목회자로, 지난 20여 년 세월을 주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특권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어서 한국말을 잊어라. 영어로 꿈을 꾸게 될 때에야 비로써 진짜[?] 캐나다인이 되는 것이다.”
처음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먼저 이민 온 선배들에게 듣던 말이다. 3년 차 형과 동생, 우리 삼형제는 한국말을 하지 않고 영어만 쓰기로 약속을 했다. 한국말을 하면 한 대씩 맞기로 했다. 분명히 영어를 했다는데 발음이 엉터리라 무슨 말인지 몰라 치고 박고, 무의식 중에 한국말을 했다가 몰매 맞고, 너무 세게 때렸다고 다툰 기억도 난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는 포기했다. 영어를 못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안에서 영어만 쓰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우리가 집에서 영어만 쓰는 것을 아버님은 허락지 않으셨다.
한국학생이 거의 없던 온타리오 미시사가의 ‘T.L. Kennedy’ 고등학교 시절, 나의 영어 실력은 많이 향상되었다. 한인친구는 없고 백인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한국 액센트도 없이 영어를 한다고 친구들이 인정해 주었다. 캐나다인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백인친구들과 어울릴수록 혼자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반면, 대학에서 한국 친구를 만나면 표현 할 수 없는 편안함과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 해도 온전한 캐나다인이 될 수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한국문화와 캐나다문화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눈도 뜨게 되었다. 나에게는 두 문화권의 강점을 소유하며 누리는 특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잃고 싶지 않는 나를 보게 되었다. 또한 캐나다 시민으로서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도 있음을 알았다.
만 28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나는 ‘이중언어와 이중문화 한미[Korean-American]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기독교교육’이 차세대를 위한 최상의 방법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체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한국어를 잃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적 긍지를 잃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한인교회 생활과 한국어 사용을 고집한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체험을 넘어 이민교회의 미래를 위해, 차세대의 영성과 개인 개발을 위해, 이민가정을 위해, 사회생활의 적응과 넓은 기회를 위해 이 교육이 학문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임을 확신한다.
영어사역[English Ministry]으로 한인차세대 기독교교육을 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 미국 내 대 도시마다 성공사례가 되는 2세를 위한 영어권 교회가 있다지만, 이 모델을 가리켜 이민교회의 최상, 최고의 기독교 교육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영어부 사역(EM)은 한인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 한인 1세 목회자 뒤를 이어 차세대 교회를 이끌어 갈 2세 교역자를 세우는 데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서 유학 온 목회자나 그나마 1.5세 한미 목회자가 지금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앞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영어부 사역(EM)은 유치 유년 중고등부 교육을 받았다는 우리 자녀들이 한인교회를 떠나는 ‘silent exodus[소리 없는 탈출, Helen Lee가 1996년 Christianity Today 기독교 학술지에 올린 글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그 이후 2세 자녀들이 이민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가 됨]’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우리의 차세대 자녀들은 신앙의 고향을 잃어버린 떠돌이가 되었다. 어릴 적 추억이 남아있는 돌아갈 home church가 없는 불쌍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영어 사역[English Ministry]의 한계와 문제점
이민 교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기독교 교육은 무엇인가? 기독교 교육이라면 당연히 구원으로 인도하는 신앙 교육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가도록 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고,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인 이민교회는 영어권 교역자에게 영어가 더 편한 한인2세 자녀들의 영혼을 맡겼다. 한국 문화, 언어, 정체성보다 영적 필요를 우선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한국말이나 한국인이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예수님 안에서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반기를 드는 영어권 교역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이 말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부족하다. 미주 한인교회의 미래를 위해, 차세대 자녀의 잠재력 극대화를 위해, 이민 가정문제를 위해, 미국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신앙적 정체성과Korean-American이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2003년 미주 한인 이민역사 100주년 기념 행사가 하와이에서 있었다. 1903년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미주 한인 이민사의 첫 획을 긋게 된다. 그들은 하와이에 교회를 세우고 이민초기의 역경을 이겨낸다. 100 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초청할 이민초기 교회의 후손을 물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어느 영어권 교회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인교회에서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100년 전 초기 이민교회 후손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100년 역사가 교훈하고 있다. 영어부 사역(EM)은 100년 후 한인교회의 미래가 될 차세대를 키우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필요와 요구만 고려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반영하는 기독교 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 이민자의 길이 멈추는 날이 와도 Korean-American의 정체성을 가진 우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 빛을 드러내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이 교육은 한미[Korean-American] 정체성과 함께 하는 기독교 교육이다.
나중에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중문화권 자녀의 영성이 한국말을 잃고 미국화 되어버린 자녀의 영성보다 더 깊다’고 한다[현용수박사의 1992년 Talbot 신학교 교육학박사 논문의 주제임]. 교회를 떠나는 확률이 낮고 신앙심도 좋다는 뜻이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2세 자녀가 한국어를 못하는 자녀보다 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고 더 좋다. 부모-자녀의 가정문제가 적다는 뜻이다. 학교 성적과 대학 진출하는 확률도 이중언어/이중문화권 한인 2세가 훨씬 높다. 가정환경, 경제적 여건, 지역…. 여러 요소가 학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중언어 구사력이 지적 개발과 IQ를 높여주는 것 또한 검증된 사실이다.
영어사역[EM]만으로 차세대 자녀를 향한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민교회가 차세대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이 과연 영어권 사역자를 두는 것일까? 영어권 자녀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독립적으로 세워가도록 분리시켜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이민교회의 교육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민교회가 추구해야 할 더 나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이제 생각해 보자.
/달라스동부장로교회 김정오 목사
‘이민 교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목적과 방향’은 다음 편에 연재됩니다
“어서 한국말을 잊어라. 영어로 꿈을 꾸게 될 때에야 비로써 진짜[?] 캐나다인이 되는 것이다.”
처음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먼저 이민 온 선배들에게 듣던 말이다. 3년 차 형과 동생, 우리 삼형제는 한국말을 하지 않고 영어만 쓰기로 약속을 했다. 한국말을 하면 한 대씩 맞기로 했다. 분명히 영어를 했다는데 발음이 엉터리라 무슨 말인지 몰라 치고 박고, 무의식 중에 한국말을 했다가 몰매 맞고, 너무 세게 때렸다고 다툰 기억도 난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는 포기했다. 영어를 못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안에서 영어만 쓰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우리가 집에서 영어만 쓰는 것을 아버님은 허락지 않으셨다.
한국학생이 거의 없던 온타리오 미시사가의 ‘T.L. Kennedy’ 고등학교 시절, 나의 영어 실력은 많이 향상되었다. 한인친구는 없고 백인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한국 액센트도 없이 영어를 한다고 친구들이 인정해 주었다. 캐나다인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백인친구들과 어울릴수록 혼자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반면, 대학에서 한국 친구를 만나면 표현 할 수 없는 편안함과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 해도 온전한 캐나다인이 될 수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한국문화와 캐나다문화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눈도 뜨게 되었다. 나에게는 두 문화권의 강점을 소유하며 누리는 특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잃고 싶지 않는 나를 보게 되었다. 또한 캐나다 시민으로서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도 있음을 알았다.
만 28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나는 ‘이중언어와 이중문화 한미[Korean-American]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기독교교육’이 차세대를 위한 최상의 방법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체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한국어를 잃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적 긍지를 잃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한인교회 생활과 한국어 사용을 고집한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체험을 넘어 이민교회의 미래를 위해, 차세대의 영성과 개인 개발을 위해, 이민가정을 위해, 사회생활의 적응과 넓은 기회를 위해 이 교육이 학문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임을 확신한다.
영어사역[English Ministry]으로 한인차세대 기독교교육을 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 미국 내 대 도시마다 성공사례가 되는 2세를 위한 영어권 교회가 있다지만, 이 모델을 가리켜 이민교회의 최상, 최고의 기독교 교육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영어부 사역(EM)은 한인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 한인 1세 목회자 뒤를 이어 차세대 교회를 이끌어 갈 2세 교역자를 세우는 데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서 유학 온 목회자나 그나마 1.5세 한미 목회자가 지금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앞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영어부 사역(EM)은 유치 유년 중고등부 교육을 받았다는 우리 자녀들이 한인교회를 떠나는 ‘silent exodus[소리 없는 탈출, Helen Lee가 1996년 Christianity Today 기독교 학술지에 올린 글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그 이후 2세 자녀들이 이민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가 됨]’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우리의 차세대 자녀들은 신앙의 고향을 잃어버린 떠돌이가 되었다. 어릴 적 추억이 남아있는 돌아갈 home church가 없는 불쌍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영어 사역[English Ministry]의 한계와 문제점
이민 교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기독교 교육은 무엇인가? 기독교 교육이라면 당연히 구원으로 인도하는 신앙 교육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가도록 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고,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인 이민교회는 영어권 교역자에게 영어가 더 편한 한인2세 자녀들의 영혼을 맡겼다. 한국 문화, 언어, 정체성보다 영적 필요를 우선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한국말이나 한국인이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예수님 안에서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반기를 드는 영어권 교역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이 말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부족하다. 미주 한인교회의 미래를 위해, 차세대 자녀의 잠재력 극대화를 위해, 이민 가정문제를 위해, 미국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신앙적 정체성과Korean-American이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2003년 미주 한인 이민역사 100주년 기념 행사가 하와이에서 있었다. 1903년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미주 한인 이민사의 첫 획을 긋게 된다. 그들은 하와이에 교회를 세우고 이민초기의 역경을 이겨낸다. 100 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초청할 이민초기 교회의 후손을 물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어느 영어권 교회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인교회에서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100년 전 초기 이민교회 후손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100년 역사가 교훈하고 있다. 영어부 사역(EM)은 100년 후 한인교회의 미래가 될 차세대를 키우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필요와 요구만 고려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반영하는 기독교 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 이민자의 길이 멈추는 날이 와도 Korean-American의 정체성을 가진 우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 빛을 드러내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이 교육은 한미[Korean-American] 정체성과 함께 하는 기독교 교육이다.
나중에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중문화권 자녀의 영성이 한국말을 잃고 미국화 되어버린 자녀의 영성보다 더 깊다’고 한다[현용수박사의 1992년 Talbot 신학교 교육학박사 논문의 주제임]. 교회를 떠나는 확률이 낮고 신앙심도 좋다는 뜻이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2세 자녀가 한국어를 못하는 자녀보다 부모와의 관계도 원만하고 더 좋다. 부모-자녀의 가정문제가 적다는 뜻이다. 학교 성적과 대학 진출하는 확률도 이중언어/이중문화권 한인 2세가 훨씬 높다. 가정환경, 경제적 여건, 지역…. 여러 요소가 학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중언어 구사력이 지적 개발과 IQ를 높여주는 것 또한 검증된 사실이다.
영어사역[EM]만으로 차세대 자녀를 향한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민교회가 차세대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이 과연 영어권 사역자를 두는 것일까? 영어권 자녀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독립적으로 세워가도록 분리시켜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이민교회의 교육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민교회가 추구해야 할 더 나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이제 생각해 보자.
/달라스동부장로교회 김정오 목사
‘이민 교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목적과 방향’은 다음 편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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