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자신의 경험 일부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도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환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혹독하고 끔찍했던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갈 희망조차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환난을 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찌 바울 사도만 이런 경험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혹 이런 경험이 없을까요? 정말 견디기 힘든 환난, 고통들이 우리에게도 없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험만 주신다고 했는데 때로는 그 시험이나 환난이 우리 힘에 지나도록 혹심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런 경험을 하곤 합니다. 사랑하던 가족들로 인해 이런 경험을 합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토록 소중했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려 눕습니다. 그토록 땀 흘려 키워온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됩니다. 때로는 알베르 까뮈가 쓴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막막한 공허감에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최근에 발간된 시사주간지 타임에는 성녀라고 불리는 테레사 수녀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바울 사도에게는 두 가지 귀중한 교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첫째는 더 이상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게 했습니다. 둘째는 그렇게도 힘든 고통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주셨으니 앞으로도 이런 환난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 건져주시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이라는 가장 귀한 보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인 중 몇 분이 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한 몸이기에 한 분이 아프면 모든 교인들이 똑같이 몸서리를 칩니다. 아파합니다.
이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우리를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를 도와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이요, 그것을 보고 기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119 긴급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때로는 힘에 지나도록 고통스러운 환난이어서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끔찍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렇게 죽고 나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도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환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혹독하고 끔찍했던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갈 희망조차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환난을 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찌 바울 사도만 이런 경험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혹 이런 경험이 없을까요? 정말 견디기 힘든 환난, 고통들이 우리에게도 없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험만 주신다고 했는데 때로는 그 시험이나 환난이 우리 힘에 지나도록 혹심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런 경험을 하곤 합니다. 사랑하던 가족들로 인해 이런 경험을 합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토록 소중했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려 눕습니다. 그토록 땀 흘려 키워온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됩니다. 때로는 알베르 까뮈가 쓴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막막한 공허감에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최근에 발간된 시사주간지 타임에는 성녀라고 불리는 테레사 수녀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바울 사도에게는 두 가지 귀중한 교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첫째는 더 이상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게 했습니다. 둘째는 그렇게도 힘든 고통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주셨으니 앞으로도 이런 환난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 건져주시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이라는 가장 귀한 보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인 중 몇 분이 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한 몸이기에 한 분이 아프면 모든 교인들이 똑같이 몸서리를 칩니다. 아파합니다.
이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우리를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를 도와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이요, 그것을 보고 기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119 긴급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때로는 힘에 지나도록 고통스러운 환난이어서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끔찍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렇게 죽고 나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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