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는 분노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분노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위험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노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분노 가운데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그것을 의분(義憤, righteous indignation)이라고 합니다. 불의한 것을 보거나 경험할 때 일어나는 것이 의분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의분을 가지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하지만 의분이라 할지라도 그 의분이 절제되지 않으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분별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분은 절제된 의분이었습니다.
의분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분노는 의분이라기보다는 노함입니다. 화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노를 발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분노는 폭력적이며 파괴적입니다. 때로는 아주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많은 인간관계의 문제와 갈등은 화를 잘못 다루는 데서 생깁니다.
그렇다면 왜 화가 나는 것일까요? 그 원인은 아주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 원인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잘못된 기대에서 생깁니다. 비현실적인 기대에서 생깁니다. 상당히 많은 화의 원인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그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향해 분노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당장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잘못된 분노의 중심에 자아가 있습니다. 교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교만이 분노의 씨앗입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성숙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자신 안에 때로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조용히 지켜보십시오. 화가 나면 화를 내기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화를 다스려 주시고 평강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 1:19).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십시오. 그때 우리 마음은 분노가 아닌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