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신자 때 복음서를 읽으면서 바리새인들의 행위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그들이 너무도 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썩어 빠진 정치꾼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또 예수님에게 대항하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은 왜 저렇게 사는지 바리새인하면 이해할 수 없는, 권력에 중독된 아주 독종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넓어지고, 또 바리새인들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여러 설교를 들으며 기존에 제가 생각해오던 바리새인들의 이미지는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복음을 올바로 깨닫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제가 묵상하며 깨닫고 알게된 바를 조금 나눠보고자 합니다.

바리새파의 형성

바리새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형성이 되었으며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된 이후로 그들은 계속해서 타민족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게 정복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안티오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에서 제우스 신에게 돼지 피를 뿌리고 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후 유대교의 성전 제사와 율법을 금지하는 조치에 맞서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고 아주 잠깐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때 마카비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하스모니안 왕조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 때 많은 서기관들과 랍비들을 중심으로 바리새파가 형성됩니다. 바리새 혹은 원어로 파루쉬 (הפרושים) 라는 단어는 구분되다라는 뜻으로 이방인과 부정함에서 분리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회개하며 구분된 삶을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이들은 율법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바리새인들의 삶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절제된 것 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손을 닦고 말씀을 읽고 정결한 음식만을 먹으며 이방인을 만나지 않고 십일조를 내고 금식을 하며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바리새인들의 노력

이들은 정의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칩니다. 일례로 하스모니안 왕조중에 아리스토블루스 1세가 죽고 그 살로메가 그 남편의 첫번째 동생 얀네우스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결혼을 해 버렸습니다. 그때 다들 두려워서 조용히 있었지만 바리새파 사람들만 일어나 그것이 율법에 맞지 않음을 주장하며 항거를 했고, 그 결과 살로메에 의해 8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굴하지 않고 그 부도덕에 저항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가령 세계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모진 고문을 받고도 자신이 믿는 진리를 붙잡고 매주 교회에 나오며 항상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말씀에 대한 지식이 넘치며 온화하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보시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헌신으로 살아낸 고귀한 사람들을 압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 봉사한 슈바이쳐 박사라던지 테레사 수녀같은 분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이유로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런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부르는 비신자들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 저게 진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추앙 받을만한 사람들... 바리새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바리새인으로써의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빌립보서 3:4~6>

즉 자신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그들의 행위만 그랬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아예 달달 외울정도로 말씀을 진지하게 공부했고 또 엄청난 성경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땅에 있는 어떠한 신학자들보다도 더 많이 성경을 연구했고 이해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 이었을것 입니다.

왜 예수님은 훌륭한 인간의 표본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을까요? 그냥 책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탄이 너희의 아비라며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의로운 자라고 명시하셨습니다. 조금 바꾸어 얘기하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늘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그것은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나 속에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대언자들의 묘를 만들고 의로운 자들의 돌무덤을 수리하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대언자들의 묘를 만들고 의로운 자들의 돌무덤을 수리하며 그러므로 너희가 대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너희가 너희 자신에게 증언하는도다. 그런즉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29~33>

예수님은 그들이 겉으로는 참 아름답게 보인다고, 즉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볼 수 있는게 아니라 겉모습을 통해 누군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당시의 유대인들도 아름다운 겉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의 생각이고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도덕 기준과 하나님이 갖고 계신 도덕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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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의로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니여서 감사하다고 기도했고, 자신들이 너무 의로워서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하나님의 도덕 기준은 실제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간음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속으로 그런 상상을 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것 마저도 죄이며, 이미 간음한 것과 다름이 없는 무거운 죄 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정죄하신 것도 바로 그것 입니다. 겉모습과 행동은 아름답다! 하지만 너희 마음속은 죄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혹시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아닙니까? 내가 착하게 살면 된다고 여기고 내가 저 사람보다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정죄하고...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율법을 최고로 잘 지킨 바리새인들도 의롭게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슈바이쳐도 테레사 수녀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선하게 살아도 그 행위만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살인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평생 봉사하며 산 사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은 살인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평생 봉사만 하며 전재산을 기부하고 산 사람 중 누가 더 의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은 살인자가 더 의롭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살인자는 완벽히 의로운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에 가고 평생 봉사만 하며 전재산을 기부하고 산 사람은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불공평하다고 얘기할 것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며 성경이 이야기하는 바이며 하나님의 뜻 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절대 기준인 성경으로 여러분 자신을 심판해 보십시오. 내가 인간이 만든 법으로는 죄가 없고 착하게 산 사람 일수는 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는 흠없이 존경 받을만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도덕 기준에는 도달할 수 없는 죄인일 뿐 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 & 23>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서 온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의는 구약 내내 예언되어 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입니다. 이 메시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게 아닙니다. 완성하러 오신 것 입니다. 그는 도저히 인간이 지킬수 없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로 가득찬 인간의 대표가 되어서 죄의 삯을 대신 치루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 즉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온 인생, 업적, 무죄함, 의로움을 전가 받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 중에 가장 의로운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들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고 자부하는, 율법을 지킴에 흠이 없었다고 하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온 인간이 보기엔 흠이 없는 완벽한 율법 지킴을 똥같이 더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 <빌립보서 3:8~11>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최고의 의는 하나님의 기준에 똥 같이 더러운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이룬 의로움이 예수님 것과 비교 했을 때 똥같이 더러운 것이여서 버렸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는 자신의 행위가 사실은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은 속 마음은 더럽고 끔찍한데 겉모습만 포장을 한, 회칠한 무덤 같은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착한일을 조금 했다고 하나님한테 소원 빌어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내가 볼때나 착한 일이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아무 의미 없는 일 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조금 했다고 구원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그런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봉사 활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헌금했다고 구원 받은자라는 확신을 갖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내어 드릴 수 있는 한가지는 믿음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28~29>

인간이 가진 최고의 의로는 하나님을 죽이는 일 밖에 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이 없이 자기의 의를 내세워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던 바리새인이 어떤 열매를 낳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때에 유다가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넘겨받은 사람들과 관속들 한 부대를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거기로 오니라. <요한복음 18:3>

바리새인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쌓아온 의가 무너지자, 예수님과 비교해 보니 자신들의 의가 가치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존경심과 경외가 사라지자, 가차 없이 자신의 속에 있던 더러운 것이 겉으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마귀의 자식이었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한 복음 8:44>

자기 의로 제사를 지낸 가인이 믿음으로 제사를 지낸 아벨을 죽이듯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였으며 그렇게 아름다운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빛이신 예수님이 드러내자 결국 그들 속에 더러운 것이 쏟아져 나와 버렸습니다.

그 바리새인이 실은 저와 여러분이며 다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바리새인들의 실수를 보고 회개할 기회가 놓여져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위와 의를 신뢰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은혜를 신뢰하시겠습니까?

[출처:fingerof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