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자신만 아는 깊은 밤이 찾아온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밤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기도하면 곧 길이 열릴 것 같았는데 여전히 문은 닫혀 있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곧 응답하실 것 같았는데 언제나 상황이 달라지지 않기만 할 때가 적지 않다.
[2] 그때 우리의 마음에는 이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보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왜 하나님은 많은 이들이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겪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가?”
하나님이 죽은 분이라면 차라리 포기라도 할 텐데, 살아계심이 분명함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현실을 거듭해서 경험하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조차 있다.
[3]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들려준다. 시편 31:24의 내용이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인생의 모든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된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기도가 응답되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소망이 성취되어 마음이 한껏 고무된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도 아니다.
[4] 이 말씀은 눈물을 삼키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에게, 더 이상 걸어갈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시편 31편을 기록한 다윗은 평안한 궁궐에서 이 고백을 한 것이 아니다. 당시 그는 위기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고, 원수들은 그의 생명을 노렸으며,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렸다.
[5] 다윗은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내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시편 31:9). 이 말은 이런 뜻이다. “하나님, 저는 이제 너무 지쳤습니다.” “제 마음도, 제 몸도, 제 영혼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계속 제 소원과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6] 그도 두려웠다. 그도 외로웠다. 그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하나님을 꽉 붙잡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절망 가운데 이렇게 선언한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시 31:14).
[7]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는 “그러하여도”이다.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수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그러하여도 나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러하여도 나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믿음이란 문제가 없는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다.
[8] 믿음은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다림을 멈춰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기다림은 다르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버티는 시간이다.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믿는 시간이다. 시 31:24에서 “바란다”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다.
[9]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온다”라는 믿음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눈물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잊지 않으신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밤을 다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심에도 우리 생각에 적절한 때에 나타나서 해결해 주지 않으시니 미칠 지경일 때가 많다.
[10]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우리의 현실로 인해 속이 상할 때가 많다. 불의와 부정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악인들로 인해 분노가 치밀 때가 많다. 그런 이들의 죄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서 더욱 화가 솟구친다.
하지만 다윗이 마지막에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주목해 보자.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이유는 자기에게 있지 않다.
[11] 그 어떤 크고 벅찬 부정적인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그 이유가 있음을 알자.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19)
다윗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붙들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12] 어느 때보다 흑암이 깊은 절망의 터널을 걷고 있다.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악이 성행하고 구역질 나는 모습들만 보게 된다. 하지만 이 한마디를 기억하자. “그러하여도...” 지금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겨울나무가 따뜻한 봄을 준비하고 있듯, 어두운 땅속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의 인생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