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2030 젊은이들의 '국민 참정권 훼손' 규탄 시위가 전국 대학가와 신학대학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선택적 분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의 수십 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장시간 대기하다 투표를 포기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수많은 시민과 젊은이들이 수일째 밤을 새워가며 문제 해결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도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8일 감리교신학대학엔 12.3 계엄 당시 이를 비판하는 시국 선언에 동참했던 21인 교수를 겨냥한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를 게재한 '감신대 정상화를 위한 복음주의 학생연합'은 "그때 정의를 외쳤던 21인의 교수들은 지금 침묵하는가?"라며 현 상황에 입을 다물고 있는 교수들을 질타했다.

학생들은 과거 교수들이 12.3 계엄령 사태 때 규탄하는 목소리를 낸 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또한 동일한 잣대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교수들이 외쳤던 정의가 오늘도 유효한지, 그날 외쳤던 민주주의가 오늘도 유효한지" 되물었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전국의 수십 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그중 야당 후보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선 투표가 중단되거나 유권자가 몇 시간씩 대기하다 투표를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져 선거 관리 부실을 넘어 부정 선거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사태 앞에서 감신대 학생들은 과거 정의를 외쳤던 21인의 교수들이 "왜 지금 침묵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거다. 그때 정의와 민주주의, 국민의 권리를 말했으면 지금도 같은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마땅하다며 지금 침묵하는 건 그때의 외침이 신앙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감신대 교수 21인은 지난 2024년 12.3 계엄 선포 직후 "계엄령 선포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는 내용의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계엄 선포가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국민을 두려움과 혼란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국회의원들을 향해 대통령의 탄핵을 주문했다.

당시 신학대 교수 시국 선언이 감신대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평의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정치적 행보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함께 즉각적인 탄핵과 직무정지를 요구한다"는 시국 선언을 65명 교수 연명으로 발표했다. 교수평의회는 자신들의 선언이 단순한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신학적 사건"이라고도 했다.

그랬던 신학대 교수들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선 침묵한 건 학생들의 시각에서 공정한 상식으로 보일 리 없다. 교수들이 정치적인 사안 때마다 내세운 '신앙적 양심'이라는 것이 실은 특정 권력에만 적용되는 정치적 가치가 아니냐는 게 학생들의 인식이다.

지방선거 참정권 훼손 사태를 규탄하는 대학가의 목소리가 신학대로 번지면서 총신대, 장신대, 감신대, 한신대, 고신대와 백석대, 침신대 등 시간이 갈수록 모든 신학대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2030 젊은 세대가 느끼는 우리 사회 정의와 공정에 대한 박탈감과 기성세대의 '선택적 분노' 표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세로 결집하는 양상이다.

얼마 전 유명 커피브랜드가 5.18에 '탱크'라는 용어를 마케팅에 사용했다가 호되게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 시민단체들까지 5.18정신 모독이라고 대노하며 커피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사주가 나서 여러 번 고개 숙여 사과하고 책임자를 경질했지만, 정부 주도의 불매운동으로 이 커피 브랜드는 심각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5.18의 불행한 역사를 기억하는 국민의 시각에서 기업이 고의든 실수든 이런 마케팅을 했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백번 사과해도 모자라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정부가 주도한 것도 일찍이 없던 일이다.

정부가 민간기업 불매운동에 나서자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분노를 쏟아내던 이들이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엔 이상하리 만치 조용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낙선하자 한 좌편향 유튜브 채널 진행자가 "일베를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라고 하고 이 채널에 출현한 모 교수가 "20대는 설득하지 말고 몽둥이와 권력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식의 극언을 쏟아내도 이들이 입에 올린 '탱크'와 '몽둥이'란 단어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누구 하나 분노하기는커녕 꾸짖는 이조차 없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한 건 헌법기관에 의해 국민 기본권이 침해당한 중차대한 사건이다. 일개 기업의 잘못된 마케팅과는 비교가 안 된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커피 브랜드에 그토록 비분강개하던 이들이 이번 사태에 일제히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거다.

신학대 교수들의 침묵도 매일반이다. 비상계엄 사태를 신학적 사건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교수들이 이번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설명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어떤 사안에 대해선 분노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선 침묵하는 게 하나님의 공의일 순 없다. 그건 특정 정치 편향성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선택적 분노'의 영역일 뿐이다. 이런 기성세대의 이중 잣대와 '선택적 분노'를 불공정으로 인식한 전국 대학가와 신학대 학생들의 분노 표출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