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혜다.
삭개오 이야기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명명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많은 학자들은 “인자”라는 호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니엘서 7:13-14이 가장 중요한 성경적 배경을 제공한다고 본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 7:13-14)
다니엘 7장 13-14절에 따르면 “인자 같은 이”는 모든 이에게 마땅히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며 그의 권세는 영원무궁하다. 그의 권세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권세다!
그런데 삭개오 이야기는 “인자 같은 이”에 관해 일종의 반전을 보여 준다. 누가복음 19:10의 “인자”는 섬김을 받는 대신, 잃어버린 자를 직접 찾아 나서 구원하시는 섬김의 종이다(막10:45 참조). 그리고 그 인자는 며칠 후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그 섬김을 완성하실 것이다. 누가복음 19:10은 인자가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적 권세를 삭개오를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데 사용치 않으시고, 그를 찾아 구원하는 데 사용하신다.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요한이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하실 수 있다고 선포했던 대로(눅3:8 참조), 인자이신 예수님은 돌처럼 생명 없는 삭개오의 심령을 살려 참 아브라함의 자손, 참 이스라엘로 만드시는 새 창조의 기적을 베푸신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 가운데 18년 동안 사단에서 억눌려 있는 “아브라함의 딸”을 자유케 하셨던 그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삭개오를 맘몬의 손아귀에서 해방하신다(눅13:16; 19:9 각각 참조).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중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잃어버린 양-동전-아들 비유로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 삭개오를 친히 찾아와 구원하신다(눅15장 참조). 그렇게 비유가 실제가 된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 불렀다(7절).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리에게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보셨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19:9 하반절; 13:16 참조)
이웃들은 정결한 자, 무죄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부자 세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참 제자의 모습을 발견하셨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세리장에게서 민족의 배반자를 보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서 참 하나님 백성을 보셨다. 동료 유대인들은 키 작은 세리에게서 약탈자를 발견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그러니까 자신에게 아무 것도 돌려줄 게 없는 이들-과 조건 없이 나누는 하나님 나라의 자선가를 미리 발견하셨다.
언약 백성의 약탈자와 벗한다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삭개오의 집으로 보란 듯이 들어가신 주님, 그렇게 당당히 세리와 친구가 되어 주시고, 잃어버린 아브라함 자손의 구원을 이루신 은혜의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신다(5절, 9절 참조). 그렇기에 우리에겐 소망이 남아 있다. 그 은혜의 주님이 오늘도 생생히 살아 계신다. 그렇기에 ‘이제는 다 끝장이다!’고 되뇌는 영혼에도 갱생의 소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절)고 말씀하시는 그 분이 우리의 희망이며 세상의 소망이다.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그 분이 바로 복음이다.
삭개오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의 결정적인 사역을 앞에 두시고도 길목에 위치한 잃어버린 영혼을 손수 찾아가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로 시작하고, 그 잃어버린 영혼을 친히 구원하시는 인자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장엄한 선언으로 마무리된다(1-6절, 9-10절). 삭개오 이야기는 이렇듯 은혜의 찬가다.
모든 것이 은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말이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 말이다. 악랄한 죄인을 제자로 만드시는 새창조의 은혜 말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그 인자의 은혜 말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