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한국인의 심리가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진정한 느낌과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주관적인 정체성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인터넷 소셜네트웤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무책임한 각종언론 매체들의 기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인양 즉흥적으로 동조하며 생각의 공허함을 메꾸고 있는 심리들이다.
매일매일의 바쁜 일상에서 삶을 제대로 바라다 볼수있는 여유를 상실한 탓일 것이다. 하물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간판급 뉴스앵커맨의 입에서 자신의 생각인 양 발설하는 시사논평이란 것이 한국인이면 누구나가 다 공유해야 된다는 식의 상황적 윤리와 대중여론에 편승한 바른생활 맨의 전형으로 편가르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평가해 볼 일이다. 어린시절에 스스로의 느낌이나 자기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란 성인들의 심리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고 단지 여론을 따라가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공동 의존성을 갖게된다.
이렇듯 언론과 여론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한국인들의 심리가 혹여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을거라는 어떤 이슈에 부닥치게 될 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순식간에 세(勢)를 규합하며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최근 일부 카카오톡 사용자의 대화 내용에 대한 정부당국의 감청.압수 수색 사실이 밝혀지면서 개인의 사생활침범을 이유로 한국의 많은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독일의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대거 사이버 망명을 감행하고 있다. 도대체 숨어서들 무슨 비밀스런 정보들을 나누길래 국가안보를 위해서 IT기업들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겠다고 하는 정부정책보다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욱 중요 하다며 호들갑스럽게 몇백만명이 순식간에 '망명'씩이나 감행하고자 하는 것일까?
얼마전,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삐라를 문제삼으며 고사총탄을 발사하는 총격도발을 감행하자 사람들은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을 정당화하며 최근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위해 전격 방남한 북한 최고실세 3인방의 민족적 용단을 배신하는 '남조선 인간 쓰레기들'의 대북삐라 책동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더욱 강력한 섬멸적 응징만이 있을거라고 또다시 공갈하고 나섰다.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늘상 그랬던 것처럼 한국사회의 타협할 줄 모르는 진보와 보수간의 여론충돌을 부추겨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노림수임이 뻔하다.
결과적으로 지금 그들의 이간질은 남한내에서 또 다시 약발이 먹히면서 북한인권의 심각성을 계몽하려는 민간단체의 노력이 위기를 맞고있다. 그러나 지금 무엇 보다도 심각한 위기는 북한의 용의 주도한 대남전략에 맞서 한국정부가 취할수 있는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라는 사실이다.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정부의 모든 대북정책들을 국민이 모두 알수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한국내 너무 거세졌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첩보기능이 거의 식물상태에 있다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있다.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의 권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용인되어 져야 하는걸까? 지금 사람들은 법과 정책도 자신들이 세를 규합해서 반대하면 그 뿐이라는 초법적 반정부 시위를 밥 먹듯이 하고있다. 그리고 정치는 국민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자신들이 살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저울질하고 있는 형상이다. 원칙없고 책임없는 관료와 정치인이 난무한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지금 한국정부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적 권리를 억압하는 새로운 유신독재가 행해지고 있다며 사이버 망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인민들은 독재권력의 노예가 되어서 일사분란 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지만 남한사람들은 도가넘는 권리를 주장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있다. 이러다가 한순간 남과 북의 힘의 균형이 깨어 졌을때 과연 어느쪽이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있을까?
지금 불확실성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권력의 붕괴조짐을 한국정부가 평화통일의 골든타임으로 할용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국민 모두가 좀더 성숙한 자세로 정부를 믿어주고 협력하려는 지혜가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다.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카더라'통신에 너무많이 의존하고 있는 한국민들의 심리가 주관적인 판단을 잃고 있음에 경종을 울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