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기 3:12-31
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다음은 노스리지에 위치한 만남의교회 6일 새벽강단에서 최사무엘 목사가 전한 말씀이다.
오늘 본문은 두번째 사사인 ‘에봇’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에봇’은 베냐민 사람으로 15절 말씀에 ‘왼손잡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그를 왼손잡이로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특별히 ‘에봇’은 첫 사사 ‘웃니엘’과 세번째 사사인 ‘삼갈’보다 더 상세히 기록을 했습니다. 삼갈에 대해서는 31절 한절 밖에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서 ‘에봇’에 관해서는 20절이나 할당을 했습니다.
에봇은 매우 용맹스러운 자였습니다. 한규빗(50Cm)이나 되는 칼을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감추고 뚱뚱한 모압왕 에글론을 살해합니다. 에봇은 용맹한 지략으로 그에게 접근해서 찔러 죽이고, 모압사람 일만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29절에 보면 그 일만명 모두가 모압의 장사요 용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잔인하게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는 장면을 상세히 기록한 것일까요? 그냥 ‘죽였다’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비극적인 잔인한 일을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에봇의 계획 하나 하나,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동작 하나 하나가 아주 구체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글론 왕을 죽이고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그 당찬 계획은 단순히 될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닌 겁니다.
치밀한 계획과 그 계획에 따른 실행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계획과 동작마다 세밀한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접근하기 위해 공물 바치는 것을 이용한 것, 길갈까지 돌아와서 은밀히 왕을 만날 것을 요청하고, 왕이 곁에 선 자들을 물러가게 하고, 왕을 홀로 있게 만든 후 왕에게 접근해서 살해합니다. 이 정도까지 되려면 모압왕 에글론의 신임을 얻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계획을 누설하지 않고 치밀하게 마음속에 두고 일을 진행해 온 겁니다.
에봇이 어떤 사람입니까? 15절 말씀에는 그가 왼손잡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0:15-16절을 보시면 베냐민 지파에 완손잡이가 700명이 있었습니다. 그 700명 모두가 물매를 잘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이 던진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왼손잡이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성경원어에는 왼손잡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오른손을 써야 정상인데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이라서 ‘왼손잡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8년 동안 에글론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신 후에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그 왼손잡이를 쓴 겁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부족함을 오히려 창피스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 하십시요!’ 말만하면 그다음부터 고민에 빠져듭니다. 자기는 그렇게 능력이나, 재력이나, 학력이나 뭐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나 주님의 일은 능력이나 재력이나 학력으로 하지 않습니다.
에봇이 오른손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지략과 용맹함이 아디서 나왔습니까?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 바로 거기서부터 이런 지략과 용맹함이 나온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른손을 못 쓰는 단점 때문에 그는 오히려 오른손을 잘 쓰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한 겁니다.
비록 왼손잡이 이지만 믿음으로 하는 겁니다. 700명이 물매를 잘 던지는 사람들이 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죽기로 연습하고 훈련하고 자신을 키운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대단한 능력 때문에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사용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진 장점이 장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점이 영원한 단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단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는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단점은 세상에서 쓰여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원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겁니다.
얼굴 예쁘고 돈 많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오히려 축복된 길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가 학식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가장 유치한 죄를 범했습니다.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는 평생 병원한번 안가봤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집니까?
여러분 어는 건강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지 않을만한 병은 가끔씩 앓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아플 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봇처럼 모두가 약점이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욱 노력하며 산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야합니다.
저희 교회에 새로운 부서의 임명과 봉사자들이 정해집니다. 모두가 에봇처럼 각 부서마다 치밀한 계획과 성실한 자세로 충성하며 부르심에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