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난 선교에서 보여주셨던 한량없는 은혜로 이번 2차 선교에서도 아프리카를 살릴 영적 리더들이 많이 나올 것이란 꿈. 1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한 시도 잊을 수 없었던 저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침대 시트를 가득 덮고 있는 아프리카 호텔의 벌레들과 숨 막히듯 밀려오는 더운 열기, 2주일 이상 강의와 집회를 인도해야 하는 강행군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는 저들을 위해 내가 해야만 할 것은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가난과 질병으로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불쌍한데 그 영혼까지 구원받지 못하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순간 눈물이 흘렀는지 시야가 뿌옇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떠오르게 하시며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뜨겁게 하셨다.

출발하기 전부터 주위에서 건강에 대한 걱정을 했다. 선교를 다녀오면 일주일 이상 꼼짝없이 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1차 선교가 다 마치기도 전에 다시 오기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집회와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차 선교에서 브리키나 파소를 떠나 가나로 향하는 도중 아프리카의 한 목사님께 "내년에는 힘이 들어서 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 목사님께서 갑자기 다리를 붙잡으시며 내년에도 꼭 와달라고 너무나 간절히 부탁 하셨다. 또 다른 목사님들도 방문해 달라고 간청 하셔서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주위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자 반대할 수 없어 대신 중보기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교 기행은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다.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브리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교역자들이 꼭 다시 와달라는 애타는 부탁과 지난 집회의 은혜와 기적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니 비행기는 어느덧 수도 와가두구에 도착해있었다. 공항은 여전히 먼지바람과 굴뚝 연기로 자욱했지만 저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을 영혼들의 간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일에는 1500여 명이 모여 예배를 인도했다. 아프리카에 오자마자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집회를 마무리 할 무렵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또 자신의 육신의 고통 때문에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주기 시작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안수받기 위해 강단 앞으로 나왔다. 날씨도 덥고 온몸의 힘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주님을 사모하며 기도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을 모른 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애드빌을 먹고 몸을 지탱하며 저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그리고 마음을 다해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이후 낮에는 지난 선교와 마찬가지로 교역자 세미나를 인도하고 저녁에는 연합집회를 이어나갔다. 그곳의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씩 시간만 되면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집회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년 동안 이번 선교를 위해 기도로 준비해왔고, 브리키나파소 사람들도 이번 집회를 기다리며 철저히 준비해왔다. 그러다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집회의 주 강사인 내가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이다. 차와 충돌하면서 다른 곳은 견딜 만 했지만 무릎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일이라 집회 중에 혼자 호텔로 들어왔다. 잠시 쉬면서 괜찮아지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릎은 계속 부어올랐다. 이대론 설교는 고사하고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 불 꺼진 방안에서 주님께 기도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에서는 오직 나와 주님과의 대화만이 흐를 뿐이었다.

"하나님 오래 동안 준비한 아프리카 선교인데 교통사고가 나서 통증이 심합니다. 많은 영혼들이 부족한 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있는데 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치료를 받을 시설이 부족하고 치료를 다 받고 나면 집회는 이미 끝날 것이었다. 계속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 영혼들을 두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치료해주십시오.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의 진리를 알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자 합니다. 저를 통해 주님 일하여 주십시오. 집회가 계속 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밤 깊은 호텔에서 그렇게 기도한 후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께서 이 아프리카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심하게 부어있던 무릎이 가라앉고 서서 설교 할 수 있을 만큼 통증도 견딜 만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아프리카의 불쌍한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주님 제 몸을 드려 주님의 음성을 전하겠습니다. 이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겠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린 후 다음 날 집회를 인도할 수 있었다.

총 집회는 2주 동안 진행됐다. 집회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 가운데 은혜를 받았고, 가나의 목회자들과 브리키나파소의 현지 목회자들이 100여 명이 참석한 세미나를 통해서는 기독교 복음에 대한 신학적 물음과 대답을 이어나갔다. 특별히 2기 집회 때 기억이 남는 것은 자궁암으로 하혈까지 했던 한국 선교사 사모님께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권능으로 치유함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가나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과 총무가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나를 가나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5기 때는 가나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게 된다.

2기 아프리카 선교에선 선교사님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을 절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현지 음식에 적응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있어 무엇인가 봤더니 비적마른 뼈에 딱딱하게 굳은 닭고기였다. 또한 사람들은 나무뿌리에서 나오는 것을 갈아 먹고 있었고, 쌀은 콩기름에 볶아서 먹곤 했다. 다행히 라면과 장아찌를 가져가서 매 끼니를 그것으로 해결했다. 박우원 목사님과 고생하며 먹던 라면을 지금도 있을 수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질병에 많이 노출이 되어 있었다. 토담집에서 개와 염소와 함께 지내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물이다. 정수된 물이 없을 뿐 더러 물을 담아 놓는 시설이나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수로가 없다. 웅덩이 같은 곳에 고여 있는 물을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이 사람과 함께 먹기 때문에 수인성 질병으로 많은 고생을 한다. 최근에는 우물을 파주고 간이 정수기를 만들어 주는 선교사들이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집회를 마치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참 순수한 영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예배는 축제와 다름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을 터치할 때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가 전파될 당시 유고와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어 예배의 정숙을 강조했고 여성들에 대한 예배도 차별한 적이 있다. 선교사들도 우리 문화를 존중하며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 역시 저들의 문화를 중시하며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의 문화에 복음이 들어가면 그들 보다 더 흥겹고 신나게 찬양할 민족은 흔치 않을 것이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할 그날을 꿈꾸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서 아주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