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오늘은 두번이나 설교했습니다. 한번은 이스트베이지방의 제 어머니 연배되시는 분들이 모이신 곳에서 했고, 또 한번은 저녁에 한 가정에서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설교한 후 집에 돌아와 누워서 쉬고 있는 중에서 삭개오의 이야기가 자꾸 떠 올랐습니다. 삭개오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기 재산 중에서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고,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들은 네배로 갚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율법으로 보아도 남에게 빼앗은 것을 다시 변상할 때, 원래 금액의 20% 만 더해서 갚아주면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도 자기 수입의 10% 만 내어 놓아도 대단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엄청난 액수를 내어놓았습니다. 파격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어떻게 삭개오는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이 제가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뽕나무 위에서 숨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삭개오에게 찾아가셔서, 삭개오를 보고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더우기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보았을 때, 그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순간부터 예수님을 좋아라 하며 따라다니던 군중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돌변합니다. 예수님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세리요,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행동인데, 왜 죄인과 어울리냐는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군중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좋아라 따라다니던 군중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서, 그곳에서 유하여야 겠다고 말씀을 듣는 즉시 예수님께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삭개오를 만나고, 그의 집에 가서 유하는 것이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득될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인기는 떨어지고, 오히려 비난을 받고, 공격만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아셨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만나봤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사람, 예수님의 이미지만 손상되고,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이 뻔하고, 급기야, 자칫 자기 목숨까지 잃게 되는 그런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 역시 자기 집에 유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궁금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내게 오실까?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런 군중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죄인인 삭개오, 세리인 삭개오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그리고 꿋꿋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마음의 깊은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구나. 하늘의 보좌까지 다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아니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불사하고 나를 찾아 오시는 분이시구나….!
예수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려도, 예수님만은 여전히 내 편이 되어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늘 따돌림만 받았던 삭개오, 그 예수님의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하늘보좌도 버리고 오셨던 예수님인데, 못된 짓하며 벌었던 이 재산을 내어놓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기 재산 중에서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고,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들은 네배로 갚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율법으로 보아도 남에게 빼앗은 것을 다시 변상할 때, 원래 금액의 20% 만 더해서 갚아주면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도 자기 수입의 10% 만 내어 놓아도 대단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엄청난 액수를 내어놓았습니다. 파격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어떻게 삭개오는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이 제가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뽕나무 위에서 숨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삭개오에게 찾아가셔서, 삭개오를 보고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더우기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보았을 때, 그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순간부터 예수님을 좋아라 하며 따라다니던 군중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돌변합니다. 예수님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세리요,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행동인데, 왜 죄인과 어울리냐는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군중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좋아라 따라다니던 군중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서, 그곳에서 유하여야 겠다고 말씀을 듣는 즉시 예수님께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삭개오를 만나고, 그의 집에 가서 유하는 것이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득될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인기는 떨어지고, 오히려 비난을 받고, 공격만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아셨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만나봤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사람, 예수님의 이미지만 손상되고,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이 뻔하고, 급기야, 자칫 자기 목숨까지 잃게 되는 그런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 역시 자기 집에 유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궁금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내게 오실까?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런 군중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죄인인 삭개오, 세리인 삭개오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그리고 꿋꿋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마음의 깊은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구나. 하늘의 보좌까지 다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아니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불사하고 나를 찾아 오시는 분이시구나….!
예수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려도, 예수님만은 여전히 내 편이 되어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늘 따돌림만 받았던 삭개오, 그 예수님의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하늘보좌도 버리고 오셨던 예수님인데, 못된 짓하며 벌었던 이 재산을 내어놓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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